문학/출판/인문
문학일반

[김영희의 수필 향기] 두 갈래 길_김영희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일기예보는 내게 잔뜩 겁을 주었다. 태풍급 강풍이 5월 4일과 5일 이틀 연속 몰아칠 거라는 것이었다. 낙산사洛山寺행의 오랜 기대가 물거품이 될 것 같아 마음이 몹시 조마조마했다. 낙산사는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풍광이 아름다운 오봉산 자락에 있어 관동팔경 중에 한 곳으로 꼽힌다. 강원도 관광차 들렀던 낙산사는 가족들이 가기에 편안한, 여행길의 휴식처 같은 곳이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낙산사와 낙산해수욕장에서의 추억이 가슴에 남아 가끔씩 그곳이 떠올랐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난 추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보게 된다. 

 

    2005년 4월 4일 일어난 큰 산불이 5일 오전 낙산사로 번져 대부분 타버렸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강풍으로 낙산사에 불이 붙어, 시뻘건 불길이 경내의 많은 문화재와 아름드리나무들을 태우는 텔레비전 생중계방송에, 내 가슴도 바람을 타고 활활 태워져 까맣게 재를 남겼다. 방문 당시 가족 건강을 기원하는 기와불사를 했던 터라 그 슬픔이 더욱 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낙산사 의상대
양양 낙산사 [사진 : 양양군청]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여러차례 중건과 복원, 화재를 반복하였다고 한다. 2005년 산불이 났을 때 사천왕이 있는 곳과 홍련암만 남아서,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참고하여 2007년 4월 5일에 복원을 마쳤다. 그 당시 전각을 모두 태우고 해수관음상을 지나 홍련암 앞까지 불길이 치솟았는데, 갑자기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불길이 방향을 틀면서 홍련암은 안전하게 보전될 수 있었다고 한다. 방송해설자는 "사천왕이 자신들만 지킨 것이 아니라 의상대사가 머물렀던 홍련암과 해수관음상도 지켜서 그래도 다행이고 최선을 다했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큰 어려움을 잘 견뎌낸 낙산사를 직접 찾아보고 싶어졌다. 

 

    비바람이 차창을 세차게 때리고 유리를 뿌옇게 가렸다. 빗물이 유리창에 하염없이 흘러내려 마음을 더욱 애타게 했다. 거친 비바람이 자동차 바퀴에 계속 브레이크를 거는지 속도를 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결국 예상 시간보다 삼십 여 분 지체되었다. 양양에 가까워지니 신기하게도 비바람이 조금 잦아들어 평온을 되찾는 듯했다. 

 

    '관음성지낙산사'라고 쓰인 일주문이 먼저 반갑게 맞아주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며칠 앞둔 초파일을 알리는 연등들이 꽃이 핀 듯 기둥마다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 비에 흠뻑 젖은 영산홍이 흙 위에 꽃길을 드리웠다. 영산홍은 내게 '어서 꽃길을 걸으세요~.'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떨어진 꽃잎이 아플세라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향긋한 꽃길을 따라 산길을 오르니 돌로 둥글게 쌓아 올려진 아름다운 홍예문이 보였다. 울퉁불퉁 두툼하고 넙적한 돌이 믿음직스러웠다. 

 

    서둘러 의상대사 전시관을 들렀다. 화엄종華嚴宗의 시조인 의상대사 좌상 앞에서 경배를 올렸다. 경내에는 도기들과 잿더미 속에서 피워 올린 낙산사 중창불사 사진과 누각은 사라지고 석축만 남은 홍예문, 화재로 인해 민둥산이 되어버린 낙산사 주변 모습 사진들, 화엄일승법계도와 백화도량발원문의 목판이 진열되어 있었다. 화마에 휩쓸렸던 당시 낙산사의 모습이 사진 속에서 검붉은 울음을 토하고 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불에 타고 남은 동종銅鐘과 검게 그을린 나무토막들을 보면서 그날의 긴박했을 상황이 떠올라 전율을 느꼈다. 불에 타다 남은 낙산사 원통보전 대들보로 만든 바이올린과 첼로와 진열장이 그날의 아픔을 잊고 맑은 소리를 품고 있었다. 

 

             '... 하나 안에 일체요 일체 안에 하나/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十方世界가 포함돼 있고/모든 티끌 속에 역시 또 그러하다

             ... 처음 발심發心할 때가 그냥 깨달음이니/생사와 열반涅槃이 항상 함께 하네.'

                                                                                           

                                                                                            -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전시관을 나서며 돌계단 주위에 서 있는,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오른 소나무 앞에 섰다. 돌계단 가운데에는 한 곳에 뿌리를 둔 소나무 두 그루가 양쪽으로 비스듬히 뻗어있고, 계단 정면에는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두툼한 돌이 소나무 두 그루를 감싸고 있었다. 지금 이 길에서 어느 쪽 길로 갈 거냐고 묻는 듯한 그 글귀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은 '삶에서 이제 어느 쪽 길로 갈 거냐' 고 묻는 것 같았다. 사실 이는 모든 이들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은 앞으로 어느 쪽 길로 갈 거냐고. 그 글귀를 되뇌며 묵직한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이 길로 가면 소원성취가 되는 것일까? 두 갈래 길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소원성취의 길'을 따라 내려갔다. 이제 비바람은 가시고 먹구름만이 하늘 가득 꿈틀거렸다. 까만 기와가 비에 젖어 반짝반짝 빛났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조금씩 얼굴을 내밀며 환하게 웃음꽃을 피웠다.

   

   낙산사로의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길에서 길을 묻는 여행이었다. 

우리는 '두 갈래 길'에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두 갈래 길에서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 망설인다 [이미지: 류우강 기자]

   [작가의 생각] 

 

    우리는 '두 갈래 길'에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두 갈래 길에서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 망설입니다.
 

    날씨가 너무 안 좋으니 오늘 가지 말고 내일 갈까, 아니면 오늘 가기고 마음 먹었으니 오늘 그냥 가기로 결정하고 나설까 고민합니다.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우리는 이것을 택해야 할지 저것을 택해야 할지, 이쪽 방향이 맞을까 저쪽 방향이 맞을까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출발할 때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너무 무리해서 하다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하고 주저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앞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 당연히 생각이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힘들고 안 좋은 상황에서 시작했는데 결과는 좋게 나올 때가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만약에 내가 걱정해서 시도하지 않았다면 어쩔뻔했어?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국 해냈을 때의 자부심에 마음이 흡족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낙산사가 불에 타고 어떻게 재건되었을까, 그곳에 남아있는 것들은 그 후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큰 아픔을 겪은 낙산사를 둘러보며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김홍도의 '낙산사도'가 있어서 그대로 복원하였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 내렸습니다. 

   

    모든 것에는 한 가지 답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걸 택하면 이런 쪽의 과정과 결과가 있을 것이고, 저걸 택한다면 저런 쪽의 과정과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쉬움과 어려움이 있을 테고요. 쉽기만 하거나 어렵기만 한 것은 없을 것이니 신중한 판단 하에 행하는 것이라면 후회가 없으리라 생각하고 행동에 나서봅니다. 

 

    해보지 않은 것은 어차피 그 과정과 끝을 알 수 없고, 가보지 않은 길도 가는 도중에 어떤 일을 겪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그러니 내가 선택했다면 그 선택이 옳은 방향이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걸어가려 합니다. 

 

    이번에도 기와불사 받는 곳이 있어서 하얀 싸인펜으로,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이름을 모두 써 넣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화재가 없기를, 지붕 한 모퉁이의 빈 곳을 채우기를 바라며.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일은 후회할 일이 없으리라. 

김영희 수필가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래피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 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당선 - 공저 < 내 인생의 어부바>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 공저 <불의 시詩 님의 침묵>

한국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수상 - 공저 <김동리 각문刻文>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작가회의회원

수필가 김영희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낙산사#김영희수필향기#두갈래길#수필읽기#김영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