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해설] 김소해의 "풀*을 다시 읽다"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85]
풀*을 다시 읽다
김소해
부산항 지게 노동자들 항의시위 본 적 있
다
하루 세 끼 혹은 한 끼, 벌이가 그러해서
크레인 저 위용 앞에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밥 앞에 자유로울까 누가 욕을 던지나
먹고사는 변천사는 서성이다 놓치고
밑바탕 밑돌이 되어
놓인 자리 지탱하던
IMF건 역병이건 몸으로 맞는 회오리
남 먼저 누웠지만 늦게까지 못 일어난
이런 비 저런 바람에
쓰러진 풀 아직 운다
*김수영의 「풀」
—『서너 백년 기다릴게』(황금알, 2023)

쓰러진 풀 아직 운다
- 김소해
[해설]
이 땅의 노동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열악하다. 백면서생으로서 감히 노동자 여러분의 고충을 운위하는 것부터 모순임을 안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내 마음을 몇 번이고 ‘희망버스’에 태워 보냈다. 딸이 그 버스를 타고 돌아다닐 때 말리지 않고 다치지만 말라고 했다. 김소해 시인이 이 시조를 쓰게 된 계기는 김수영의 「풀」에 있는데 22일 엊그제, 김수영의 부인 김현경 여사가 돌아가셨다.
여사는 김수영이 1968년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직전에 남긴 시 「풀」의 초고를 원고지에 옮겨 적고 그의 시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도 했다. 남편이 세상을 뜬 뒤 아내가 57년을 더 산 예가 흔치 않을 텐데, 김현경 여사는 향년 98세로 돌아가셨다. 두 사람이 생시에 삐걱거리고 티격태격했는데 그래도 김수영의 사후 아내는 남편 기리는 일에 발 벗고 나섬으로써 생시의 앙금을 다 풀었다.
이 시조는 노동자의 권익을 생각하며 쓴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대우, 대량 해고, 산재 보상금, 노조 탄압 등을 생각하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을 신성시하지 않고 천대하고 있다. 각 공장이나 건설현장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생각하며 일을 시킨다면 사고가 이렇게까지 많이 나진 않을 것이다.
IMF 때나 코로나 사태 때 노동자는 허리끈을 더 졸라매야 했다. 더 고개 숙인 풀이 되어야 했다. 쓰러진 풀이 57년이 지난 지금도 울고 있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났는데, 그들의 고통은 가벼워지지 않고 있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밥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타워크레인에 또 올라가야 하는가. 이번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이 땅 노동자들 이마에 깊이 팬 주름살을 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김소해 시인]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1982년 《현대시조》 초회추천 1983년 《현대시조》 추천완료, 198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시조)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치자꽃연가』『흔들려서 따뜻한』『투승점을 찍다』『만근인 줄 몰랐다』『대장장이 딸』 등이 있다. 성파시조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 본상, 이호우 이영도 시조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선정 ‘올해의시조집상’ 등을 받았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