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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24] 김강호 "녹슨 문고리"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녹슨 문고리

 

김강호

 

 

어둠이 굴려내는 보름날의 굴렁쇠가

지상으로 굴러와 문에 턱, 박힐 때쯤

뎅그렁 종소리 내며 내간체로 울었다

 

원형의 기다림은 이미 붉게 녹슬었다

윤기 나던 고리 안에 갇혀 있던 소리들이

키 낮은 섬돌에 내려 별빛으로 피고 졌다

 

까마득한 날들이 줄지어 둥글어져

알 수 없는 형상으로 굳어 있는 커다란 굴레

어머니 거친 손길이 다시 오길 기다렸다

녹슨 문고리 

세월이 남긴 울림

 

고향 집의 문 앞에는 늘 문고리가 걸려 있다. 하지만 그 문고리가 새것일 때와 오래되어 녹이 슨 뒤의 표정은 전혀 다르다. 세월은 쇠붙이에도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곧 삶의 기록이 된다. 자작 시「녹슨 문고리」는 바로 그 낡은 사물에서 시작한다.

 

보름달을 굴렁쇠에 빗대며, 그 달빛이 문에 닿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때 울려 나오는 문고리의 종소리는 단순한 금속음이 아니다. 힘없이 떨리는 그 소리는 오래된 기억의 흔적이자, 세월 속에 잠긴 기다림의 소리다. 문고리는 이미 붉게 녹슬었고, 그 안에 갇혀 있던 소리들은 별빛처럼 흩어졌다.

 

문고리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굴레이며, 삶의 무게를 붙잡아두는 매듭이다. 녹슨 문고리는 "까마득한 날들이 줄지어 둥글어져 / 알 수 없는 형상으로 굳어 있는 커다란 굴레"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게 이어지고, 원을 그리며 하나의 굴레 속으로 묶인다.
 

그렇다면 이 녹슨 문고리가 상징하는 함축적 의미는 무엇일까? "어머니 거친 손길이 다시 오길 기다렸다."는 돌아올 수 없는 어머니의 손길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간절하게 표현하고 싶은 나의 울림이다.

 

작품은 작은 사물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우리는 누구나 세월의 무게 앞에서 녹슨 문고리를 가진다. 그 문고리는 사랑하는 이의 부재와 기억을 담고 있으며, 여전히 다가올 손길을 기다린다. 보름달이 휘영청 솟은 날 밤 송편을 빚으며 자식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생생한 모습이 울컥 가슴을 울린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또렷한 수묵화 한 점이 하늘에 걸려 있다.

 

녹슨 문고리를 잡아보며 어머니를 부르자 그 소리를 눈물이 먼저 듣는다.

 

어머니!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시인 김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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