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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하루에 시 한 편을 365] 박래빗의 "모지스 할머니"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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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회 연재를 마치며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모지스 할머니

 

박래빗

 

습작기였다 책 한 권을 샀다

읽고 나서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다

그때의 잠이 달디달고 달았다

 

나는 내가 쓰는 시를 믿었다

 

민주가 그랬다

언니, 우리가 쓰는 시를 믿자

 

그 말이 더 시를 더 믿게 만들었다

 

내가 쓰는 시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시를 쓰기 위해 달려왔던

 

시간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리고 더 써야 할 시가 있다는 것

그것까지도 믿어주는 일

 

아예, 이제 내가 사라져서

시만 남는 일 그리고

 

시가 된 내가 촛불을 밝히고

촛불이 되어 너에게 옮겨 붙는 일

 

―『☆빛 커튼의 [소년](신아출판사, 2025)   

그랜마 모지스(Grandma Moses)로 알려진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Anna Mary Robertson Moses, (1860 ~ 1961)

  [해설]

 

   우리가 쓰는 시를 믿자

 

  모지스 할머니는 75세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까지 살면서 미국의 국민화가로 존경받는 할머니입니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소박한 솜씨로 빚어낸 작품들은 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미국인들에게 응원의 손길이 되었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창밖의 전원마을 풍경, 빨래하는 마을의 여인들, 산타를 기다리며 잠든 아이들, 결혼식이나 마을 축제 행사……. 모지스 할머니가 그려낸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행복은 보는 이들에게 큰 위안을 줍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민들의 일상을 그린 박수근 화백의 그림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100번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되어 전국에서 축하를 보냈고, 101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는 수많은 국민이 슬퍼하는 가운데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의 영혼이 사라졌다며 추모하기도 했습니다. 모지스 할머니에 대한 미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에서 그녀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박래빗 시인은 자신의 시가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들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횡설수설하는 시인이 많습니다. 알쏭달쏭한 시를 배격하고 독자들이 믿는 시인, 믿고 읽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 했기에 쓴 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유기체이므로 반드시 늙고 병들고 죽을 테지만 진심으로 쓴 시는 누군가의 가슴에 촛불로 남을 것입니다. 이 시의 마지막 연 시가 된 내가 촛불을 밝히고/ 촛불이 되어 너에게 옮겨 붙는 일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시라는 것이 이심전심을 가능케 하지요. 시를 쓰는 내가 촛불이 되고 타인의 가슴에 옮고, 그래서 세상의 한쪽이 밝아지면 좋겠습니다. 박 시인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1년의 연재를 마치기로 합니다. 작별인사를 합니다.

 

  저는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쌍용그룹 홍보실 직원이었습니다. 홍보실 소속이었지만 입사하자마자 그룹사 편찬실 파견근무를 했습니다. 홍보실에는 류안 씨가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박사논문을 쓰고 몇몇 대학에 시간강사로 출강하게 되어 1995년 말에 사직한 이후에도 그와는 연락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류안 씨는 작년 연초에 코리아아트뉴스란 인터넷 포털신문을 만들려고 하니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 왔습니다. 저는 예전에 <뉴스페이퍼><더스쿠퍼>를 통해 매일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제가 해설의 글을 붙이는 연재를 2년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글을 보내주면 실어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원고를 매주 보내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2년 동안 매일 썼었다고, 다시 매일 보내줄 수 있다고 답변하곤 작년 31일부터 연재를 시작해 오늘 228, 마침내 365번째 원고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뉴스페이퍼><더스쿠퍼>로부터 원고료를 단돈 10원도 받은 적이 없으며 <코리아아트뉴스>로부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인이 유명하건 않건 간에 제가 읽고 느낌이 온 시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이 일을 꼬박 365일 동안 하면서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평 쓰는 데 드는 품이 30이라면 시를 골라내는 데 드는 품은 70이었습니다. 매일 평균 5권의 시집이 제게 오는데 전에 온 시집도 포함해 매일 예닐곱 권을 통독하면서 제 마음을 움직인 시를 1편 고르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집이 하루에 평균 1권이 오기에 제 시집을 보답으로 보내드리면서 잘 받았노라고 쓴 메모지를 넣기도 했었는데 이런 지면에 연재를 하니까 시집이 많이 와 그렇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시집 받고 연락을 못 드린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려 사과를 드립니다. 그리고 졸문을 읽고 하트모양을 붙여 격려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간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난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좋은 지면을 내주신 류안 발행인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2026228일 이승하 올림.

 

[박래빗 시인]

 

본명은 박혜정이다. 201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펭귄과의 사랑』을, 첫 산문집 『i의 예쁨』을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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