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세종출판사, 김희정 시인의 『열리지 않는 것을 열어두는 연습은 꽤 오래 걸린다』 출간

[문학=코리아아트뉴스 이청강 기자] 세종출판사는 지난 2026년 9월 15일, 김희정 시인의 『열리지 않는 것을 열어두는 연습은 꽤 오래 걸린다』시집을 출간했다.
현대시의 새로운 목소리로 주목받는 김희정 시인은 지난 2025년 4월 출간한 제1시집『편협한 내생각만큼 협소한 골목길이 하나있다』에서 내면의 좁은 생각과 도시의 협소한 공간을 겹쳐내며, 개인적 사유와 사회적 풍경을 동시에 담았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시인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과 고독을 탐구한다.
올해 9월 신간 『열리지 않는 것을 열어두는 연습은 꽤 오래 걸린다』에서는 닫힌 세계와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열리지 않는 것을 열어두는 연습”이라는 표현은 독자에게 삶의 인내와 기다림을 떠올리게 하며, 시집 전체가 하나의 긴 여정처럼 읽힌다. 세종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은 강렬한 색감의 표지와 함께 시인의 실험적 언어가 돋보인다.
시어를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떠올리고 곱씹는 되새김질 언어
마치 독자들은 시어를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떠올리고 곱씹는 되새김질을 하며, 또 읽고 다시 또 읽는다.
김희정 시인은 이번 신작을 통해 “책이 당신을 맞는 순간, 첫 문장은 아직도 열리지 않은 문밖에서 계속 쓰이고 있다.”라는 작가의 말을 남겼다. 이는 독자와 시집이 만나는 순간이 곧 새로운 시작임을 강조하며, 시의 열린 가능성을 제시한다.

형광 핑크 책 표지 제2시집 색감은 시의 차가운 수학적 개념을 감각적이고 따뜻한 정서로 전환시켜, '극한의 감정'과 '존재의 미학'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극한 0」의 감정적 긴장과 존재의 미묘함이 한층 더 섬세하게 드러나 형광 핑크빛 속에서 여성이 빛을 향해 손을 뻗는 장면은 존재의 갈망과 극한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빛은 여전히 닿을 수 없는 ‘0’의 자리로 남아 있지만, 여성의 실루엣은 그 거리 속에서 끊임없이 다가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장면은 시의 핵심인 “다가가면서도 도착하지 않는다”는 구절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김희정 시인, 불완전성의 미학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성찰... 독창적인 시 세계관
김희정 시인의 작품들은 「틀림의 문법」, 「0이 되지 않는 극한」, 「열리지 않는 것을 열어두는 연습은 꽤 오래 걸린다」, 「나는 선택에서 배제된 1그램의 질량이다」 등에서 공통적으로 존재의 의미와 언어의 한계를 탐구한다. 시인은 정답과 오답, 닫힘과 열림, 선택과 배제라는 대립적 개념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세계의 구조를 사유한다.
첫째, 「틀림의 문법」과 「0이 되지 않는 극한」은 정답과 틀림, 극한의 개념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다. 정답에 가까워질수록 그림자가 돌아선다는 표현은 인간이 완전성에 도달할 수 없음을 드러내며, 수학적 은유인 " '0' 에 가까워지지만 '0' 이 되지 않는 수"는 존재의 불완전성과 지속적인 긴장을 보여준다.
둘째, 「열리지 않는 것을 열어두는 연습은 꽤 오래 걸린다」는 닫힌 세계와 빛의 흐름을 통해 내면의 치유를 탐구한다. 닫힘은 단절이 아니라 빛이 스며드는 틈새를 마련하는 과정으로 제시되며, 이는 삶의 고통을 견디며 조금씩 열리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한다.
셋째, 「나는 선택에서 배제된 1그램의 질량이다」는 존재의 배제와 무의미 속 의미를 드러낸다. 배제된 질량, 서랍 속 단추 같은 이미지들은 사회적·존재적 주변부를 상징하며, 시인은 그 무의미함 속에서 오히려 유의미함을 발견한다. 이는 인간 존재의 미세한 흔적까지도 의미화하는 시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김희정의 시는 결국 불완전성의 미학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0이 되지 않는 극한 / 김희정
끝내 닿지 않는 값이 있다
나는
다가가면서도 도착하지 않는다
이에 가까워질수록 작아지고
더 선명해진다
사라지기 직전 존재는
가장 또렷한 윤곽을 가진다
손 뻗으면
조금 전 내가 도착해 있고
지금의 나는 늦는다
0은
나를 허용하지 않는 자리
나는 나누어지며 그 주변을 맴돈다
멈추지 않는 분할 속
나는 존재에 가까워진다
아니
존재하지 않음에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존재한다
가까워질수록 닿지 않는 거리가 있다
너에게 닿지 않는 방식으로 너를 사랑했다
0에 가까워지지만
0이 되지 않는 수
나는
그 극한을 지나가는 중이다
나는 다가가면서도 도착하지 않는다
0에 가까워질수록 작아지고 선명해진다
사라지기 전 존재는 또렷한 윤곽 가진다

프로필
김희정
현) 부산 동래문인협회 사무국장
《시와 수필》 등단 (2018)
동아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시집 『편협한 내 생각만큼 협소한 골목길이 나에게는 하나 있다』 출간(2025, 교보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