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규 개인전 《四時和順》, 한벽원미술관서 개최...흐릿한 풍경 속에서 만나는 사계절의 순환
수묵 풍경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인간 존재의 관계를 탐구해 온 임태규 작가의 개인전 《四時和順(사시화순) - Harmony throughout the four seasons》이 2026년 8월 25일부터 9월 6일까지 서울 한벽원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26 월전미술문화재단 선정작가 지원전시로 마련됐다. 전시 제목인 ‘사시화순’은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계절이 조화를 이루며 순조롭게 이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임태규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발견되는 생명의 순환과 자연의 질서, 그리고 그 풍경을 마주하는 인간의 내면을 자신만의 수묵 언어로 풀어낸다.

작가의 화면에는 눈과 안개에 둘러싸인 산과 강, 꽃을 피우기 시작한 나무, 자연 속을 홀로 걷거나 머무는 인물 등이 등장한다. 형상들은 분명한 윤곽으로 고정되기보다 번지고 스며드는 먹과 색채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백토를 바른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로 표현한 풍경은 부드럽고 매끄러운 질감과 함께 깊은 공간감을 형성한다. 흰 눈으로 덮인 겨울 풍경은 고요와 적막을 전하고, 희미한 안개와 구름은 현실의 풍경을 기억과 사유가 머무는 내면의 공간으로 전환한다.
임태규는 고향인 강원도 내륙의 자연을 중심으로 수묵 풍경을 그리며 작품세계를 형성해 왔다. 초기에는 ‘수묵의 새벽, 새벽의 수묵’, ‘정선의 겨울’, ‘悠然見-冬·江’ 등을 주제로 강원도 산하의 새벽과 겨울, 강과 산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2010년 이후부터는 ‘흐린 풍경(Blurry Scene)’을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흐림’은 단순히 대상을 선명하지 않게 묘사하는 회화적 효과에 머물지 않는다. 눈과 안개, 구름과 빛에 의해 풍경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를 사유하게 하는 조형적 장치다.
이번 《四時和順》에서는 그동안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온 겨울 풍경과 더불어 봄의 꽃과 생명력이 어우러진 작품들이 소개된다. 겨울의 정적과 봄의 생동감은 서로 단절된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연결된다.



겨울 작품은 색채가 희미해지고 시야가 점차 가려지는 화이트아웃과 같은 감각을 전한다. 눈으로 덮인 산과 들, 흐릿한 하늘과 수면은 창백한 기억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며, 관람객을 깊은 고요와 사색의 시간으로 이끈다.



반면 봄을 표현한 작품에서는 앙상한 나무 위로 꽃이 피어나고, 노란 꽃봉오리와 인물이 나란히 자리한다. 겨울의 침묵을 지나 다시 찾아온 꽃과 빛은 생명의 회복과 희망을 상징한다. 봄꽃은 마치 은하수의 별을 떼어다가 벌거벗은 나무에 옷을 입힌 듯 화면을 밝힌다.
작품 속 인물은 자연을 지배하거나 관찰하는 중심적 존재로 그려지지 않는다. 광대한 산과 강, 나무와 꽃 사이에 조용히 머무는 작은 존재로 등장한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겸손한 위치를 보여주는 동시에, 홀로 자연을 마주할 때 더욱 선명해지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환기한다.

미술평론가 메리 허바첵(Mary Hrbacek)은 임태규의 풍경에 대해 자연의 계절적 변화를 시적인 명료함으로 기록한다고 평가했다. 작가가 홀로 여행하며 발견한 경이로운 순간을 관람객도 함께 경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허바첵은 임태규의 시선이 낮과 밤의 리듬, 겨울에서 봄으로 이행하는 순간에 집중한다고 보았다. 자연의 미묘한 변화가 충격이나 거부감이 아닌 기쁨과 놀라움으로 일상에 스며들도록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작품 속 소나무는 풍경의 구도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넘어 겨울과 장수, 회복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홀로 서 있는 인물 곁의 나무는 동행자처럼 자리하며 인간과 자연이 맺어 온 오래된 유대를 상기시킨다.
임태규의 풍경은 동아시아 수묵화의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동서양 풍경화의 보편적인 정신과 맞닿아 있다. 번지는 먹과 절제된 색채, 백토가 만들어내는 흰빛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순간적인 표정을 포착한다.
눈 덮인 산과 강에서 발산되는 백색의 빛,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꽃, 안개 너머로 이어지는 수평선은 자연을 구체적인 장소인 동시에 정신적인 공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도시의 소음과 오염, 혼잡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사유의 시간을 제안한다.

임태규는 화가이자 동양미학과 예술철학 연구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으며, 현재까지 33회의 개인전과 500여 회의 단체전 및 초대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2005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장자 미학사상을 연구했으며, 2010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장자미학 사상》과 《의경,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을 저술하고 장자 미학과 예술철학을 주제로 다수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홍익대학교에서 동아시아 미학과 예술철학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적 연구는 임태규의 회화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의 풍경에서 자연은 단순한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삶의 근원과 다시 연결되는 공간이다. 계절의 흐름을 따르는 화면은 생성과 소멸, 고요와 생동, 기다림과 회복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四時和順》은 자연의 변화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눈송이 하나와 꽃봉오리 하나, 희미하게 번지는 빛처럼 미세한 순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겨울에서 봄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이어지는 임태규의 풍경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조용한 위안과 희망을 건넨다.
전시 개요
전시명: 임태규 개인전 《四時和順》
영문명: Harmony throughout the four seasons
전시 기간: 2026년 8월 25일~9월 6일
전시 장소: 한벽원미술관
전시 성격: 2026 월전미술문화재단 선정작가 지원전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