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 책다락 80]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책소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 장편소설
제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전선을 배경으로 전쟁의 허무와 사랑의 덧없음을 그린 자전적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 )는 헤밍웨이의 장편소설이다. 19세 때 헤밍웨이는 이탈리아군 야전병원에 의용군으로서 참가했다. 다리에 부상을 입고, 또 전쟁에 대한 절망감을 스스로 깨달았다. 주인공 프레데릭 헨리는 야전병원의 운전수로서 전선에서 두 다리에 부상, 입원한 이래 간호원 캐서린 버클레와 서로 사랑한다.
캐서린의 임신을 안 두 사람은 탈주하여 스위스에서 겨울의 목가적 생활을 즐기고 봄에 출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낳은 사내 아이는 사산(死産)이었다. 캐서린도 많은 출혈로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 전쟁에 절망하고 사랑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발버둥치는 남녀의 패배감을 허무주의적인 수법으로 묘사하였다.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 작품으로 등장하여 헤밍웨이를 미국 최고의 문학가로 올려놓았다. 사랑과 죽음의 한계 정황(情況)을 한 줄의 군말도 없이 묘사하여 20세기 실존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의 무공으로 은공훈장 수여 1953년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 수상.

●Synopsis
『무기여 잘 있거라』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 장편소설로, 제1차 세계대전 이탈리아 전선을 배경으로 전쟁의 허무와 사랑의 덧없음을 그린 자전적 작품입니다.줄거리 개요미국인 구급차 중위 프레데릭 헨리는 이탈리아군에 자원해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후송하다 다리에 중상을 입습니다. 병원에서 영국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와 만나 가벼운 연애가 진실한 사랑으로 깊어지며, 그녀의 임신 소식까지 듣게 됩니다.전선 복귀 후 이탈리아군의 패퇴 속에서 헨리는 동료들의 죽음과 군 내부의 부조리를 목격하고, 반역 혐의로 처형 위기에 처하자 강을 건너 탈출합니다. 캐서린과 스위스로 도피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출산 중 그녀는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헨리는 비를 맞으며 병원을 떠납니다.
주요 테마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무상함을 빙산 이론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사랑조차 전쟁 앞에 무너지는 현실을 직시합니다. 헤밍웨이의 실제 이탈리아 경험(구급차 운전사로 부상)이 반영되어 생생합니다.헨리의 내면 독백과 대화 중심 서술이 전쟁 허무주의를 강조하며, 마지막 장면의 비는 상실과 새로운 시작의 상징으로 읽힙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1899~1961)
빙산 이론이라 이름 붙인 헤밍웨이의 간결하고 절제된 표현 방식은 20세기 소설에 강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모험적인 삶과 대중적인 이미지 역시 후대에 영향을 크게 끼쳤다. 헤밍웨이는 대다수 작품을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 발표하였고,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헤밍웨이는 소설 7편, 단편집 6편, 논픽션 작품 2편을 출판하였다. 소설 3편, 단편집 4편, 논픽션 작품 3편은 사후에 출판되었다.
헤밍웨이의 작품 대다수는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여겨진다.헤밍웨이는 일리노이주 오크 파크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캔자스 시티 스타》에서 몇 달 동안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군대에 입대하여 전방 구급차 운전병으로 활약하였다. 1918년에는 심하게 부상을 입어 집으로 돌아왔으며, 이때 그가 겪은 전쟁 경험은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1921년 헤밍웨이는 4명의 아내 중 첫 번째 아내인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하였다. 부부는 헤밍웨이가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한 곳인 파리로 이사를 갔다.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소위 ‘잃어버린 세대’라고 불리는 1920년대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1926년에는 첫 소설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출판하였다.
1927년에는 해들리 리처드슨과 이혼한 뒤 폴린 파이퍼와 재혼하였다. 둘은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1936~1939)에서의 해외 특파원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후 이혼하였고, 헤밍웨이는 내전을 바탕으로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를 썼다.
그해 헤밍웨이는 세 번째 아내인 마사 겔혼와 재혼하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런던에서 메리 웰시를 만난 후에 이혼하였다. 후에 헤밍웨이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파리 해방 전투에 기자로 참여하였다.1952년에 《노인과 바다》를 출판하고 난 이후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의 사파리로 떠났다. 여행 중 두 차례의 비행기 사고를 당한 헤밍웨이는 남은 생 대부분을 병과 함께 지냈다. 헤밍웨이는 1930년도에는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 거주했고,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는 쿠바에서 거주하였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주 케첨에 있는 집을 구입하였으며,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그곳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