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54] 박효석의 "구두 수선공의 노래"
구두 수선공의 노래
박효석
세상을 꼿꼿하게 걸을 수 있도록
자존을 높여주던 하이힐 뒷굽이
더 이상 꼿꼿하게 걸을 수 없게 닳아 버렸거나
눈 코 뜰 새 없이 생계를 위해
세상을 뛰어다니던 구두 뒷축이
닳아빠질 대로 닳아빠져
더 이상 세상을 힘차게 디딜 수 없게 될 때면
날이면 날마다 닳아빠진 자존이나 굳센 의지를
원래대로 회생할 수 있도록
온몸과 마음으로 부둥켜안고 수선하고 있는
구두 수선공의 노래가
세상을 꼿꼿하게 걷고 있는
자존을 높인 하이힐 뒷굽 소리와
세상을 굳센 의지로 딛고 있는 구두 뒷축 소리들로
서로 서로 어우러지면서
활기찬 맥박으로 거리를 활보하게 만들고 있는
새벽 출근길
―『사랑은 오로지 사랑으로 말하라』(국제PEN한국본부, 2025)

[해설]
설날 아침의 시
오늘은 양력 2월 17일, 음력 1월 1일, 설날 아침입니다. 설날 아침에 읽기에 안성맞춤인 시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현대시는 대체로 애매성(ambiguity)이나 비장미를 추구하기에 밝은 시,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박효석 시인은 책날개에 자신이 전쟁고아라고 밝혔는데 이런 밝은 시를 써 많이 놀랐습니다. 전쟁통에 고아가 되었다는 것은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다는 뜻이겠지요. 보육원에서 성장했다고 하니 지난날의 삶이 많이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길을 가다 보면 작은 구둣방이 있습니다. 그 작은 공간 속에 아저씨가 한 분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손님이 수선해야 할 구두를 신고 오거나 들고 오면 뒷굽을 갈아줍니다. 구두를 광채 나게 닦아주기도 하는데 손님은 새 구두를 신은 양 기분이 상쾌해져 구둣방을 나오게 되지요. 박효석 시인은 구두 수선공의 역할에 대해 조금 더 생각을 진전시켜 봅니다.
그대는 구두 수선공을 “날이면 날마다 닳아빠진 자존이나 굳센 의지를/ 원래대로 회생할 수 있도록/ 온몸과 마음으로 부둥켜안고 수선하고 있는” 분으로 보았군요. 몇 푼 돈을 받고 일하지만 구두 수선공은 한 집안의 가장이거나 연로한 부모를 대신해 가계를 책임지고 있는 자식일 수 있습니다. 구두를 수선하면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세상을 꼿꼿하게 걷고 있는/ 자존을 높인 하이힐 뒷굽 소리와/ 세상을 굳센 의지로 딛고 있는 구두 뒷축 소리들”과 어우러져 사람들이 “활기찬 맥박으로 거리를 활보하게 만들고” 있으니 아침을 데려오는 사람이로군요. 예전에는 신문이나 우유를 배달하는 아침의 전령사가 있었는데 요즘엔 청소차의 엔진 소리와 구두 수선공의 콧노래가 아침을 열어젖히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비로소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한스 짐머가 음악감독을 맡은 영화 <Spirit>의 주제곡들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마을의 구두 수선공 아저씨와 함께 새해를 활기차게, 멋지게 열어나가도록 합시다.
[박효석 시인]
1947년 4월 3일생. 수원 근교에서 태어나 세 살 되던 해에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전쟁고아가 됨. 청소년 시절까지 보육원에서 성장. 1978년 《시문학》으로 등단. 1985년 제2회 수원시문화상 예술부문 수상. 경기도 청소년예술제 추진위원 및 문학부문 심사위원장 역임. 경찰대학교와 삼성전자에서 시창작 지도를 했음.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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