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민윤기의 "어.머.니."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11]
어.머.니. 1
―1950년 9월
민윤기
네 살 때였을까
엄마 젖이 먹고 싶었을까
엄마! 하며 밥 짓던 어머니 부르며
부엌문 열었을 때
어딜 들어와! 때릴 듯 부지깽이 쳐들고
화난 표정으로 노려보시던 어머니!
내게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엄마 모습이다
육이오 동란통에
흑백사진 한 장 남기고
죽은 어머니
어머니
어…
어.머.니. 2
―1953년 4월
여덟 살 때였다 국민학교 1학년
어머니 돌아가신 지 삼 년 만에 면례緬禮를 했다
전쟁통에 채마밭에 아무렇게나
묻었던 어머니를 선산으로 모셨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울면서 어머니를 만났다
무덤 밖으로 나온,
백골로 누워 있는,
그날 이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추억도
없다
모자 갈등도 없고
고향도 없어졌다
어머니가 나오는 드라마
어머니가 주인공인 영화
하다못해 소설까지
보지 않았다
ㅡ『홍콩』(스타북스, 2020)에서

[해설]
그대 기억 속의 어.머.니.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네 살이었던 민윤기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기 2편이다. 이들 시편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실화라고 생각한다. 젊은 여성이 왜 죽었는지, 이유는 시에 나와 있지 않다. “육이오 동란통에/ 흑백사진 한 장 남기고/ 죽은 어머니”라는 구절은 지어낸 이야기로 간주할 수 없게 한다. 부엌문을 열었을 때 화난 표정으로 노려본 어머니의 얼굴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엄마의 모습이라고 하니 이 시 화자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다.
전쟁통에 채마밭에 아무렇게나 묻었다가 3년 만에 선산에 모셨다고 하니 어머니의 죽음이 비명횡사였나 보다. 이장을 지켜본 여덟 살 소년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추억도 없지만 어머니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가 나오는 소설 보는 것도 괴롭기만 했다. 그래서 보지 않았다고 한다. 처절한 역설이다.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중단되었고 세월이 70년 이상 흘러갔다. 정전협정을 맺은 것은 UN과 중국, 북한이라 대한민국은 3자 서명의 당사자도 아니었다. 3년간 전쟁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대체로 한국군 62만 명, UN군 16만 명, 북한군 93만 명, 중국군 100만 명 정도가 죽었다. 1955년도 『통계연감』에 따르면 민간인 사망자 24만 4,663명, 학살자 12만 8,936명, 행방불명자 30만 3,212명이었다. 이 숫자는 확인된 사람들만이니 얼마나 끔찍한 전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민윤기 시인처럼 가슴팍에 못을 박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 것이다. 무덤 밖으로 나온, 백골로 누워 있는 어머니의 시신을 본 기억을 갖고 살아오셨다니!
[민윤기 시인]
1966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베트남전쟁 종군 체험을 살려 「내가 가담하지 않은 전쟁」 연작시 30여 편을 발표한 바 있다. 1974년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시집 『유민』을 냈으나 1970년대 후반 군사정권 독재정치 상황이 되자 ‘시는 쓰되 발표를 하지 않는’ 상태로 20년간 출판사 교정직, 사보 담당자, 일간지 신문기자, 여성지 편집장, 방송스크립터 등 생계수단으로 취재 편집 분야 직업에 근무했고, 메트로신문 편집국장으로 언론사 현역에서 물러났다. 2014년부터 문예지 『시』를 발행하고 있다. 알기 쉬운 시, 독자와 소통하는 시를 지향하는 ‘시의 대중화 운동’을 펼치기 위한 시인시민단체인 ‘서울시인협회’를 창립하였다. 시집 『꿈에서 삶으로』 『서서, 울고 싶은 날이 많다』 『홍콩』 등이 있고, 엮은 시집 『박인환 전시집』 『노천명 전시집』 등과 문화비평서 『그래도 20세기는 좋았다』 『일본이 앞에서 뛰고 있다』 『이야기 청빈사상』 『소파 방정환 평전』 등이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