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정근옥의 "다보탑을 보며"
다보탑을 보며
정근옥
날마다 새벽에 눈 뜨며
마음속에
탑을 쌓아 올린다
전설이 서려 있는 묵은 나뭇등걸에
한 잎 한 잎 꽃잎을 열며
짙은 노을등을 매달아 놓으면,
황폐한 성곽 따라 흩어지던 매화 향기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
신라의 하늘을 붉은 입술로 덮는다
지난해에 피었던 꽃잎들, 바람과 함께
죽음의 골짜기를 다시 거쳐 와서는
무언정진(無言精進)의 바라춤을 춘다
바람 소리 조금만 잦아들어도 그것은
보혜(報惠)의 은총이다,
오랜 비바람 맞아본 후에야 독각(獨覺)의 눈을 뜬다
심장에서부터 들썩거리는 석공의 숨소리,
천 년 전 이끼처럼 다보탑 기둥에 묻어 있다
죽음의 세월 밀어내고 돌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ㅡ『순례길 풍경화』(국제PEN한국본부, 2024)

[해설]
다보탑의 아름다움을 높이 기리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경주에 가서 다보탑을 처음 보았다. 어려서 무엇을 알았을까만, 사람이 돌을 깎아서 장난감 조립을 하듯이 쌓아 올려 저런 탑을 만들다니, 너무나 신기하여 탑 앞에서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 뒤에도 서너 번 더 불국사에 갔는데 다보탑의 정교함은 세계 최고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 탑을 설계한 사람, 돌을 깎아서 올린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였다.
정근옥 시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석공의 숨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설계자와 석공은 날마다 새벽에 눈을 뜨면 마음속에서 탑을 쌓아 올렸을 것이다. 그들은 전설이 서려 있는 묵은 나뭇등걸에 한 잎 한 잎 꽃잎을 열게 한 천상의 사신인가. 영 사람 같지 않다. 신라 혜공왕 대(758〜780)에 건립되었다니 1250년 전이다. 그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불국사 마당에 꼿꼿이 서 있다.
아니다. 일본이 석굴암도 완전히 헤집어 놓았듯이 1925년에 다보탑도 일본인들에 의해 완전히 해체ㆍ보수되었는데, 이때 탑에서 불상을 포함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는 짧은 기록이 있으나 탑의 수리에 대한 내용이나 사리장엄구에 대한 보고서는 간행되지 않았다. 이후 1972년의 옥개석 위 돌난간의 일부 보수가 있었으며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2월에 걸쳐 상륜부의 일부가 수리되었고 일제강점기에 사용된 시멘트 모르타르를 제거하고 균열부를 메우는 등의 수리가 이루어졌다.
다보탑은 한여름의 땡볕과 한겨울의 눈보라를 1250년 동안 맞았다. 꽃이 피었다 지고, 낙엽이 떨어져 날리고,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바뀌어 가는 것을 보았다. 신라인을, 고려인을, 조선인을, 대한민국 국민을 보았다. 해와 달과 별을 보았고, 총소리와 전투기 날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석공의 숨소리를 들었고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보통 시간이 아니다. 그 숨소리, “천 년 전 이끼처럼 다보탑 기둥에 묻어 있”으니, “죽음의 세월 밀어내고 돌꽃으로 다시 피어난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렇다. 다보탑의 돌은 그냥 돌이 아니라 해마다 다시 피어나는 ‘돌꽃’이다. 1250년 동안 한자리에 있었으니 앞으로 1250년 더 한자리에 있도록 하여라.
[정근옥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감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지도위원(부이사장), 한국비평가협회 이사, 대한교육신문 논설위원, 월간 《시》 편집고문, 서울교원문학회 회장, 상계고등학교장 역임. 시집 『거울 속의 숲』『가을 산사나무 앞에서』『어머니의 강』『달과 바람에게 길을 묻다』『자목련 피는 사월에는』『인연송』『수도원 밖의 새들』『순례길 풍경화』 외. 평론집 『조지훈시 연구』 외. 교육부중앙교육연수원, 고용노동부연수원, 서울시교육연수원 등에서 강의.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