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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54] 김우의 "열대야"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54] 김우의 "열대야"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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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김우

 

얼음 조각이 유령처럼 떠다니며

더위를 유혹하는 밤,

 

—야이- 새끼야, 내 돈 빨리 갚아.

 

폭염에 찌든 수화기 저쪽에서

날선 시비들이 들락거려요

 

도심 빌딩들 사이 거꾸로 솟구치는 땀방울처럼

하늘 향해 울렁거리는 아지랑이의 습한 기억들

 

한밤중에 울리는 클랙슨처럼

정신이 번쩍 들 장대비를 애원하는 소리가

눅눅한 허공을 떠다녀요

 

열대야를 부르는 습한 소식들은 야음을 틈타

게릴라처럼 낮은 보폭으로 숨어들어요

패랭이꽃과 수박꽃 향기를 찾아 나들이 간 휴식들

자정이 넘어도 돌아오는 방법을 잊었나 봐요

한여름 밤의 노래가 더위 먹은 풀처럼 끈적거려요

이럴수록,

 

키 낮은 반지하 좁은 방들

그들만의 더위에 익숙해져야 해요

 

—아빠~ 더워 죽겠어. 우리도 에어컨 하나 달면 안 돼?

 

언제쯤이면 아이의 하소연이

시원해질 수 있을까요?

 

—『치킨과 악마』(도서출판 서정시학, 2024)

 

[해설

 

  더워도 참아야지요

 

  7월이 가고 8월이 왔습니다. 7월에 서울 열대야일이 22일로 늘면서 기상관측이 처음 이뤄진 1908년 이후 117년 만에 7월 열대야일 최다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기존 최다 기록은 1994년의 21일 열대야일 기록이었다고요. ‘아이고 덥다란 말 올해 들어 몇 번 한 것 같습니까? 백 번? 천 번?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니 간혹 승객들 간에 시비가 붙어 고성이 오가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더워서 불쾌지수가 한껏 올라가 평소에는 참을 수 있는 일을 못 참고 폭발하기 때문이지요. 듣는 저도 화가 나서 다투는 소리를 계속 듣지 않고 목적지가 아니지만 내려버리고 맙니다.

 

  김우 시인은 열대야 한밤중에 일어날 법한 일을 두 가지 들었습니다. “야이- 새끼야, 내 돈 빨리 갚아하는 화난 이의 목소리를 스마트폰으로 듣는데 바로 열대야입니다. 돈을 꿔준 사람이 열대야일 때 잠은 안 오고, 신경질이 폭발할 것입니다. 욕이라도 해야 마음이 좀 진정되려나,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전화번호를 누른 것인데, 다짜고짜 욕부터 나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밤에는 폭염에 찌든 수화기 저쪽에서/ 날선 시비들이들락거립니다. 하지만 덥다고 해서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부리면 안 되겠지요.

 

  또 한 가지 일어날 법한 일은 아이가 아빠에게 하는 하소연입니다. “아빠~ 더워 죽겠어. 우리도 에어컨 하나 달면 안 돼?” 이 땅에는 반지하, 쪽방, 고시원, 컨테이너, 단칸 셋방 등 아주 좁은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선풍기나 부채로 이 여름을 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 저희 가족이 살았던 집은 지하실이어서 바람도 안 통하고, 햇빛도 안 들어오고,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이 시를 읽어보니 그 시절 생각이 납니다.

 

  요즈음 체감온도도 아주 높고 불쾌지수도 최고치고 미칠 지경일 겁니다. 저는 이럴 때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써봅니다. 화를 내봤자 자기만 손해니까요. 지금 그대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이 여름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날도 청소차는 이른 아침에 동네를 찾아옵니다. 절절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교통정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119구급대 분들, 소방관 아저씨들, 택배기사 아저씨들, 공사현장의 작업자들, 간호사분들이 계시지요. 그분들 덕에 우리는 이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김우 시인]

 

  본명 김현철.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22년 『시와 산문』으로 등단. 삼성전자 기획관리본부 관리팀 사원, 삼성전자 한국총괄 TV사업 담당 상무이사, 삼성물산 패션 부문 영업본부장, 삼성전자 판매 리테일 혁신 담당 전무이사, 자문역 부사장 역임. 저서 『영업의 품격』『혁신의 품격』을 냈고 『공부의 품격』을 낼 예정. 여수 해양문학상, 금샘문학상 수상.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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