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40] 김기리의 "하늘나라 손자", "제비 오듯"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하늘나라 손자

 

김기리

 

해 떴네!

나 보러 왔구나.

 

비 오네!

나 보러 왔구나.

 

달 떴네!

나 보러 왔구나.

 

눈 내리네!

나 보러 왔구나.

 

하늘나라 손자가

나 보러 왔구나.

 
 

제비 오듯

 

제비가 지어 논

진흙 반달

제비집.

 

제비는

강남 갔다

돌아오는데

 

네 방은

아직도 텅 빈

제비집.

 

너는

왜 안 오니.

제비 오듯 오너라.

 

―『웃음보 터진 구구단』(아동문예, 2016)

제비 오듯 _ 김기리 시인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슬픈 동시

 

  이 2편의 동시 앞에 나오는 「메아리」에는 각주가 붙여져 있는데, “최기준: 둘째 손자. 미국 워싱턴대학교 재학 중 교통사고로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남.”으로 되어 있다. 그간 동시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것이 가족의 죽음이다. 특히 이 시에는 미국에 유학 갔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둘째 손자를 보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담담히 그려져 있다.

 

  화자는 지금 해가 뜨는 것이, 비가 오는 것이, 달이 뜨는 것이, 눈이 내리는 것이 모두 하늘나라로 간 둘째 손자의 방문 같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다. 독자들은 내용이 좀 환상적이라 선뜻 동의하지 못할지라도 이 동시에 깃든 할머니의 애틋한 정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밑의 동시에도 비명횡사하고 만 둘째 손자를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제비는 때가 되면 강남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왜 너는 안 나타나느냐고 화자가 애타게 외치고 있다. 짧지만 온몸을 쥐어짜 이룩한 그리움이 보석처럼 빛나는 동시다.

 

  동시집의 제목은 웃음보 터진 구구단인데 재미있는 시만 나오는 게 아니다. “할아버지/ 산소 앞에/ 피었네// 할머니 대신/ 절하고/ 있네”(「할미꽃」) 같은 동시도 있고, 귀뚜라미에게 울지 말라고 부탁하는 이유가 울 아빠, 지난여름에/ 하늘나라 가셨거든.”(「울지 마」) 같은 동시도 있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 이 동시집을 낸 김기리 시인은 아이들에게도 죽음의 의미를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런 동시를 썼을 것이다.

 

  [김기리 시인]

 

  1937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조선대 교육대학원 교육행정학과와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아동문예》에 동시, 2004년 『불교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오래된 우물』『내 안의 바람』『나무 사원』『달을 굽다』『기다리는 시간은 아직 어리고』가 있고, 동시집으로 『보름달 된 주머니』『웃음보 터진 구구단』이 있다. 광주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특성화지원사업,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창작활성화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광주·전남아동문학인상, 한국불교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동시해설#코리아아트뉴스시해설#이승하시인#이승하의시해설#좋은동시#동시읽기#김기시인#하늘나라손자#제비오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