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규 칼럼] 금융은 왜 늘 약자를 시험대에 올리는가
사람들은 흔히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공부가 부족했는지, 판단이 늦었는지, 위험을 너무 가볍게 봤는지 돌아봅니다. 그런데 정말 그 문제만일까요. 혹시 우리는 애초에 기울어진 판 위에서 너무 성실하게 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설계된 판 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핵심은 단순합니다. 금융시장은 중립적인 경기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규칙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산이 많고 정보가 많고 제도가 익숙한 쪽에 훨씬 유리하게 짜여 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 반복되는 변명, DLF·ELS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당국은 매번 뒤늦게 도착했습니다. 같은 실패가 세 번째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부터 직시해야 합니다. 금융당국은 손실이 터질 때마다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이미 DLF에서, ELS에서, 그리고 지금 레버리지 ETF에서 세 번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매번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다음에야 대책이 나옵니다. 이것은 우연한 시행착오가 아니라, 신상품을 시장에 내보내기 전 위험을 가늠하는 당국의 능력 자체가 구조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판매의 실패, 그리고 설계의 실패입니다. DLF 사태에서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6건 전건을 불완전판매로 판단하며 배상비율을 40~80%로 정했습니다. 이는 창구 직원의 개별 실수가 아니라 본점 차원의 과도한 수익추구 영업전략과 내부통제 부실이 원인이었다는 점을 못 박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5년 뒤 홍콩 ELS 사태에서 똑같은 문장이 반복되었습니다. 11개 판매사에 대한 현장검사 결과 확인된 것은 판매정책·소비자보호 관리체계의 부실이었고, 대표사례 분쟁조정에서 은행별 배상비율은 30~65%로 확정되었습니다. 당국은 이미 2019년에 배웠어야 할 교훈을 2024년에 또 배우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제 레버리지 ETF입니다. 2026년 5월 27일 상장 이후 8개 운용사 16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두 달 만에 4조 4천억 원에서 11조 9천억 원으로 급증했고, 거래대금은 코스피 ETF 전체의 38.2%,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에서 52%로 치솟았습니다. 위험고지문이 있었고 사전교육이 있었고 예탁금 문턱도 있었다는 사실은, 당국이 우리는 경고했다고 말할 면죄부는 될지언정, 시장 전체를 이 정도로 왜곡시킬 상품을 왜 이런 속도로, 이런 규모의 안전장치만 갖춘 채 출시했는가에 대한 답은 되지 않습니다.
몰랐다의 문제가 아니라 알면서도 놔뒀다의 문제입니다. DLF·ELS와 레버리지 ETF는 분명 다른 사건입니다. 전자는 은행이 능동적으로 권유한 상품이었고, 후자는 투자자가 스스로 매수 버튼을 눌러 선택한 상품입니다. 이 차이를 지우고 두 사건을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지적으로 게으른 일입니다. 그러나 이 차이가 당국의 책임을 가볍게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무겁게 만듭니다. DLF·ELS는 판매 현장에서 벌어진 개별적 일탈을 사후에 적발해야 했던 사건이지만, 레버리지 ETF는 애초에 규제 당국 스스로가 국내-해외 ETF 간 비대칭 규제 해소 라는 명분으로 설계하고 승인한 제도입니다. 실패의 책임이 증권,은행 영업점이 아니라 정책 설계자 자신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조차 이를 구조적인 문제 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뒤 당국이 취한 조치를 보십시오. 기본예탁금을 1천만 원에서 3천만 원으로 올리고, 대용증권 인정 기준을 폐지하고, 신규 상장과 광고를 중단하고, 괴리율(실제값) 관리 기준을 3%에서 2%로 낮췄습니다. 이 모든 조치는 시가총액이 7조 5천억 원 불어나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코스피의 절반을 넘게 흔드는 지경에 이른 다음에야 나왔습니다. 예탁금 3천만 원은 상품이 상장되기 전에는 왜 검토되지 않았습니까. 괴리율 2% 기준은 왜 상장 심사 단계에서 요구되지 않았습니까. 당국은 늘 시장이 이미 벌어진 사고를 눈으로 확인한 다음에야, 그것도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책을 서두르라고 요구한 다음에야 움직입니다. 이것은 감독이 아니라 뒤처리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상품이 애초에 왜 필요했는가입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유통되는 상품을 국내에서만 규제로 막고 있다는 지적, 그로 인해 국내 투자 수요가 충족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도입의 명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해외에 있다는 사실이 국내에 들여와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규제 완화의 논리가 시장 안정성에 대한 사전 시뮬레이션보다 앞섰다면, 그것은 정책이 산업의 요구를 검증 없이 받아쓴 것에 가깝습니다.
반복을 멈추려면 사후 대책이 아니라 사전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DLF와 ELS에서 배상 판단의 핵심은 판매사의 내부통제 부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레버리지 ETF에서 물어야 할 핵심은 정책 설계 단계의 위험 평가 부실이어야 합니다. 판매사에게는 배상 책임을 묻고 분쟁조정위원회를 열면서, 정작 제도를 설계하고 승인한 당국에게는 다음에 더 잘하겠다는 보완방안 발표로 끝나는 관행은 형평에 맞지 않습니다.
개인 투자자에게는 위험고지문을 읽었는지, 교육을 이수했는지를 따지면서, 정책 설계자에게는 상장 전 시장 영향 평가를 충분히 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네 번째, 다섯 번째 사태를 이미 예약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반복되는 실패 앞에서 이제는 상품이 아니라 그 상품을 설계하고 승인한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감사해야 할 때입니다.
이 점에서 설계된 판은 금융을 개인의 능력 차이로만 보는 시선을 거부합니다. 대신 제도, 상품, 판매 방식, 책임 구조를 하나의 체계로 봅니다. 그래서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입니다. 우리는 왜 늘 노력하는데도 지고, 누군가는 왜 늘 유리한가.
그 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습니다. 판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울어진 판은 그냥 두면 더 기울어집니다.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더 많은 설명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복잡성을 줄이고, 위험을 드러내고, 판매의 유인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결국 금융의 공정성은 개인의 성실함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제도는 약한 쪽이 실수해도 회복할 수 있어야 하고, 강한 쪽이 과도한 이익을 구조적으로 가져가지 못하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돈의 게임은 일부에게만 유리한 경주가 아니라,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공공의 규칙이 됩니다.
우리는 자산 형성의 실패를 너무 쉽게 개인의 탓으로 돌려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물어야 합니다. 정말 문제는 개인의 판단력만이었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판 자체가 공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설계된 판 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그 질문입니다.
조선규 |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