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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60] 한승원의 "죽어감을 앎은 슬픔입니다"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60] 한승원의 "죽어감을 앎은 슬픔입니다"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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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죽어감을 앎은 슬픔입니다

 

한승원

 

죽어감을 앎은 슬픔입니다

꽃도 떨어지면서 울고

새도 마지막 숨을 앞두고는 날개를 퍼덕입니다

우리들은 그 슬픔을 잊으려고 너털거립니다

술을 들이켜면서 담배를 피우면서

병문안을 가서 조문을 가서

자기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친구의 관 위에 흙을 뿌리고 재빨리

일상으로 돌아와

여자의 엉덩이를 두들기고

젖무덤을 주물럭거리고

사정射精을 합니다

남자에게 모든 것을 열어주고

덫에 걸린 암노루같이 우짖습니다

죽어감이 아니고 살아감이라고

생각을 하고 허덕이는 것은 참말

기막힌 슬픔입니다.

 

—『열애 일기』(문학과지성사, 1991)

 

낙화 [ 사진 : 류안 작가]

  [해설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소설가 한승원이 시집을 8권이나 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의 소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에로틱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원초적 본능에 충실하여 성욕을 억누르지 않고 발산한다. 단편이건 장편이건 뜨거운 성애 장면이 안 나오는 것이 거의 없다. 한승원은 인간에게 식욕과 수면욕, 혹은 출세욕과 명예욕 같은 것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성욕이 있는 것 또한 당연하다는 생명관을 갖고 있다.

 

  이 시에는 남자와 여자가 나온다. 남자는 친구가 많이 아파서 병문안을 갔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문을 갔다. 장지까지 가서 무덤 위에 흙도 뿌렸다. 장지에서 돌아온 그는 여자와 격렬한 정사의 시간을 갖는다. 여자도 남자가 광분(?)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기에 남자에게 모든 것을 열어주고 덫에 걸린 암노루같이 우짖는다. 산다는 것은 곧 죽어간다는 것이고 그것이 진리인데 그 진리를 남자는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시는, 한승원이 아니고는 쓰기 어려운, 아니 쓸 수 없는 시이다. 이 땅의 시인들은 다들 점잖아서 이런 시를 쓰지 못한다. 나는? 이런 시, 써도 발표 못한다.

 

  한승원이 3권의 시집을 냈을 때 「온몸과 온 마음으로 하는 사랑」이라는 평론을 쓴 바 있다. 그 평론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성행위 장면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묘사가 자주 보이는데 왜 한승원은 이러한 뜨거운사랑에 집착하는 것일까. 시인의 의도가 성욕 충족을 목표로 하는 외설에 있지 않음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그에게 있어 성행위는 가장 인간다운 행위, 즉 원초적인 생명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불교에서는 모든 욕망을 억누르기 위한 방편으로 면벽 참선하면서 깨달음의 길을 찾아가지만 한승원은 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시인의 논리에 따른다면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수도승처럼 욕망을 숨기려 들거나 터부시하려 들지 말고 마음껏 향유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인간의 육체는 우주의 축도, 즉 소우주이다. 성적 결합을 통해 초월적 경지에 이르고,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본질적 실체와 신비로운 합일을 이루게 된다는 탄트라 불교의 논리가 한승원의 시에는 대체로 들어맞는다.”

 

  [한승원 시인]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 『열애일기』『사랑은 늘 혼자 깨어있게 하고』『달 긷는 집』『사랑하는 나그네 당신』『이별 연습하는 시간』『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꽃에 씌어 산다』『고요, 신화의 속살 같은』을 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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