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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23] 박지현의 "태양초-눈썹지 가을"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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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초

-눈썹지 가을

 

박지현

 

1.

고가철도 아랫녘 탁 트인 보도 위에

태양초 물고추들 찐득하니 누워있다

처서의 상기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2.

길모퉁이 한쪽에 삼각 텐트 펼쳐놓고

일 년 농사 으스러질까 모로 누운 저 남자

저물녘 노을의 무게 온몸으로 받고 있다

 

3.

별 없는 밤이어도 달 없는 새벽이라도

두툼발 뒤척이며 애발스럽게 살아내야지

희아리 질벅거린 날은 철길에나 널어둬야지

 

—『코다리』(시와 소금, 2023)

"태양초-눈썹지 가을"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고추를 잘 말려야 제값을 받는다

 

  햇볕, 즉 태양에 말린 고추를 태양초라고 한다. 한 해 고추 농사를 잘 지은 사내가 고가철도 아랫녘 탁 트인 보도 위에다 태양초를 말리고 있다 . 갑자기 소나기가 와 말리던 고추가 젖어버리면? 쫄딱 망한다. 그래서 길모퉁이 한쪽에 삼각 텐트를 펼쳐놓고 노심초사 바라보며 걱정이 태산 같다. 일 년 농사 으스러질까 모로 누워 살펴보고 있다.

 

  이 시조의 첫 번째 수와 두 번째 수는 대다수 독자가 정황을 파악했겠지만 세 번째 수에 이르러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박지현 시인은 제3수에 이르러 순우리말을 여러 개 쓰고 있다. 시인이라면 우리말을 작품 안에 적절히 써 이 좋은 우리말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두툼발: 꽤 두꺼운 발.

  애발스럽다: 보기에 매우 안타깝게 애를 쓰는 데가 있다.

  희아리: 약간 상한 채로 말라서 희끗희끗하게 얼룩이 진 고추.

  질벅거리다: 물기가 많고 끈기가 있어 부드럽고 진 느낌이 자꾸 들다. ‘질버덕거리다의 준말.

 

  제3수는 화자가 사내다. 여러 날 햇볕이 영 안 들고 날씨가 습하다면 여기가 아니라 바람이 잘 통하는 철길에 널어둬야지 하고 생각한다. 자리 옮기기 전에 고추가 바짝 말라야 최상품이 될 텐데, 시인이 사내를 보며 몹시 걱정하고 있다. 부제가 눈썹지 가을인데 눈썹지눈썹과 무엇이 다른지는 전화를 드려 여쭤보아야겠다. 내가 갖고 있는 국어사전에 눈썹끈, 눈썹노리, 눈썹대, 눈썹먹, 눈썹바라지, 눈썹줄, 눈썹차양은 나오는데 눈썹지는 나오지 않는다. 강원도 사투리인지 모르겠다.

 

  [박지현 시인]

 

  1996년 《시와시학》에 시가, 1999년 《월간문학》에 동시가, 2001<서울신문><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가 당선되었다.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하고, 시조집 『골목 단상』『못의 시학』『미간』『저물 무렵의 시』『눈 녹는 마른 숲에』『코다리』 등을, 시집 『슬픔의 버릇』『오래 골목』『그대 빈집이었으면 좋겠네』『바닥경전』 등을 냈다. 동시집으로 『간 큰 똥』『무릎 편지 발자국 편지』『간지럼 타는 배』가 있다. 시조평론집 『우리 시대의 시조 우리 시대의 서정』, 시평론집 『한국 서정시의 깊이와 지평』이 있다. 김상옥시조문학상, 수주문학상, 지용신인상, 청마문학신인상, 이영도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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