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규 칼럼] 미중 정상회담 36시간의 연출
2026년 5월 15일 오전, 에어포스원이 베이징 수도국제공항 활주로를 박차고 올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젠슨 황, 팀 쿡,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16인의 CEO 수행단이 36시간의 방중(訪中) 일정을 마치고 귀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기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많은 다른 문제들이 해결됐다(A lot of different problems were settled) 그러나 블룸버그는 냉정하게 평가했습니다. 트럼프는 원하던 화려한 의전을 얻었다. 그러나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의전의 규모는 실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인민대회당 앞 21발 예포와 3군 사열, 레드카펫, 그리고 인민해방군 군악대가 연주한 빌리지 피플의 YMCA 공산당 의전 행사장에서 이 곡이 울려 퍼진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이튿날에는 1972년 닉슨 방중 이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중난하이 초대가 이어졌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정원을 거닐며 각색 장미를 보여줬고, 백악관 로즈가든에 심으라며 장미 씨앗을 선물했습니다. 중국은 트럼프의 취향을 정밀하게 연구했고, 그것을 외교 전략으로 정교하게 전환했습니다. 의전 그 자체가 이미 협상이었습니다.
5B·3T+AI, 프레임이 증명한 것,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스콧 케네디 선임 고문은 회담 2주 전 베이징을 직접 방문하여 중국 관리와 기업인들을 인터뷰한 뒤, 이번 회담의 의제 구조를 '5B·3T+AI'로 명명했습니다. 미국이 원하는 5B는 보잉, 소고기, 대두, 무역위원회, 투자위원회 였고, 중국이 지키려는 3T는 대만, 관세, 기술 이었습니다. 여기에 양측 공히 주목한 AI 거버넌스가 추가 의제로 부상했습니다. 회담이 끝난 지금, 이 프레임은 섬뜩할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미국은 5B를 얻으러 갔지만 결과는 초라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보잉 200대 구매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중국 외교부·신화사·인민일보 공식 성명 어디에도 보잉은 단 한 줄 없었습니다. 보잉 본사 역시 공식 확인을 거부했습니다. CFR의 조 리우 연구원은 "보잉뿐 아니라 대두 구매 공약도 마찬가지로 모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이 3T를 지킨 것도 확인됩니다. 대만에 관한 미국 입장은 변화 없이 유지됐고, 관세 문제는 트럼프 본인이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핵심 기술인 H200 반도체 수출 통제는 양자 회담에서 아예 의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AI 거버넌스 역시 베센트 재무장관의 CNBC 인터뷰 발언 수준에서 그쳤을 뿐, 서명된 공동성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반도체 의제야말로 이번 회담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로이터는 회담 당일 미국 상무부가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등 약 10개 중국 기업을 화이트리스트로 지정하여 기업당 연간 최대 75,000개의 H200 구매를 조건부 허용했다고 단독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길에 직접 시인했습니다. 중국은 H200을 사지 않기로 선택했다. 그들은 자국 기술을 개발하려 한다." 더욱 주목할 것은 중국 내 반응입니다. 신랑재경, 차이롄사 등 다수의 중국 미디어가 H200 관련 보도를 게재했다가 수 시간 만에 일제히 삭제했습니다. 당국이 이 담론 자체를 공개 영역에서 제거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화웨이의 어센드 910C·910D 생태계가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에서 H200은 더 이상 필수재가 아니며, 사도 사지 않아도 중국에게 전략적으로 불리한 서사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소의 무게중심이 역전됐다.
금융 분야는 중국이 내준 가장 가시적인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씨티그룹은 4년여를 대기한 중국 내 100% 단독 소유 증권 브로커리지 라이선스 심사가 트럼프 방중 시점에 맞춰 처리됐습니다. 골드만삭스는 교차 국경 투자 채널 확대를 협의했고,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는 미중 공동 인프라 펀드 창설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중국의 양보로 읽는 것은 오독입니다. 씨티·골드만의 자본이 중국 체제 내에 깊이 들어올수록, 미국 금융계는 미중 관계 안정의 최대 수혜자이자 미국 내 대중 압력 완화의 로비 주체가 됩니다. 금융 개방은 중국이 미국 자본을 지지자로 묶어두는 고도의 지정학적 계산이었습니다.
이번 회담의 보도 양상도 그 자체로 분석의 대상입니다. 중국 신화사 평론원 사설은 건설적 전략 안정"이라는 단어를 14번 반복했습니다. 이 하나의 외교 언어로 중국은 향후 미중 관계의 서사 주도권을 가져갔습니다. 반면 애틀랜틱 카운슬은 이번 회담 전체를 "큰 쇼였다, 보여줄 것은 거의 없이(A big show, with little to show for it)"라고 총평했습니다.
이 모든 장면은 하나의 구조적 역전을 말합니다. 관차자왕은 핵심을 찌르듯 분석했습니다. 예전에는 중국이 엔비디아에게 칩을 팔아달라고 했지만, 이제는 미국이 중국에게 칩을 사달라고 하는 구조로 역전됐다. 2017년 트럼프의 첫 방중에서 중국은 2,535억 달러 규모의 대형 계약을 미국에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시장이 아쉬웠던 중국이 미국에 내민 손이었습니다. 2026년의 베이징은 달랐습니다. H200을 허가해도 사지 않고, 보잉 구매를 언급해도 서명하지 않으며, 금융을 열어도 레버리지를 손에 쥔 채로 열었습니다. CSIS는 "중국이 많은 핵심 이슈에서 미국에 맞설 충분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고, 타임지는 표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중국은 이제 미국과 명확히 대등한 위치의 국가로 자리 잡았다.
기술적 불가결성만이 우리의 언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진정으로 시사하는 것은 기술 의제의 미완이나 보잉 발주의 미확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협상 구조 자체의 문법이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국제 협상 테이블에서 카드의 무게는 더 이상 관세율이나 수입 규모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수출 통제 프레임워크를 설계하는 능력, AI 생태계를 자주화하는 속도, 그리고 상대방이 내 기술 없이는 공급망을 완성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불가결성 이것이 2026년 협상의 언어입니다.
우리에게 이 회담이 남긴 메시지는 냉혹하면서도 명확합니다. 영구적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는 국제 정치에서 오직 영구적 국익만이 협상 테이블 위에 놓입니다. 미중 시소게임에서 무게 중심이 움직이는 이 시대에 우리가 꺼낼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어느 쪽도 한국 없이는 기술 공급망을 완성할 수 없다는 기술적 불가결성의 구조를 만드는 것뿐입니다.
장미 씨앗 하나를 선물로 받아 든 채 빈손으로 귀환한 에어포스원의 풍경이, 오늘 우리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감상이 아닌 팩트, 구호가 아닌 기술로 승부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이 회담이 남긴 메시지는 냉혹하면서도 명확합니다. 영구적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는 국제 정치에서 오직 영구적 국익만이 협상 테이블 위에 놓입니다. 미중 시소게임에서 무게 중심이 움직이는 이 시대에 우리가 꺼낼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어느 쪽도 한국 없이는 기술 공급망을 완성할 수 없다는 기술적 불가결성의 구조를 만드는 것뿐입니다.
조선규 |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