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문혜관의 "등나무"
등나무
문혜관
가시 달린 탱자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능구렁이도 못 오를 시멘트벽을 타고
차이면 차이는 대로
밟히면 밟히는 대로
칭칭 꼬아가며 살아간다
두 다리 절단된 채
경동시장 맨바닥 핥으며
질긴 삶 살아가는 장애인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
밑으로, 밑으로 축 늘어져
저승꽃을 피웠나, 보랏빛 멍꽃.
—『서울의 두타행자』(불교문예, 2015)

[해설]
등나무와 장애인의 생명력
등나무를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그 어떤 악조건도 다 물리치고 끈질기게 살아서 가시 달린 탱자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능구렁이도 못 오를 시멘트벽을 타고 올라가는 등나무를 닮은 존재를 시인이 보았으니, 사람 많은 경동시장 바닥을 길로 삼아 살아가는 장애인 잡동사니 판매원이었다. 두 다리가 다 없어서 그는 기어서 시장바닥을 다닐 수밖에 없다.

시인 문혜관은 불교계에서 혜관스님으로 불리고 있다. 그래서 이 장애인의 고난을 “전생에 무슨 업을 지었기에”라는 시행으로 표현하였다. 이어지는 두 행이 이 시의 백미다. 등나무와는 완전히 반대로 경동시장의 장애인은 밑으로, 밑으로 축 늘어져 저승꽃을 피웠다. 그 저승꽃은 “보랏빛 멍꽃”이다. 상처와 고난으로 점철된 이 장애인에게 시인은 경의를 표한다. 그대는 이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보랏빛 멍꽃 혹은 저승꽃을 피워낸 존재이니 높이 높이, 위로 올라가는 저 등나무보다 낫다고. 그대야말로 등나무라고.
[문혜관 시인]
1989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번뇌, 그리고 꽃』『찻잔에 선운사 동백꽃 피어나고』『서울의 두타행자』『난』『카시오페이아 별자리』 등이 있다. 계간 《불교문예》 발행인,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장으로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