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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강일 대사범, 태권도로 미국 사회에 뿌리내린 50여 년…“도장은 사람을 키우는 곳”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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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상무 태권도팀 창단 멤버에서 미국 텍사스 킬린의 태권도 대사범으로 1989년 미국행 이후 35년 넘게 태권도 보급·인성교육·지역사회 봉사 이어와 제40대 킬린한인회장으로 한인사회 봉사…태권도를 통한 민간외교 실천

미 연방하원 ‘태권도 대사범 감사의 날’ 결의안 발의에 “선구자들의 헌신을 기억해야”

 

한 사람의 인생을 설명하는 데 하나의 단어만으로 충분한 경우가 있다.

 

이강일(Kangil Lee) 대사범에게 그 단어는 ‘태권도’다.

소년 시절 처음 도복을 입었던 순간부터 대한민국 상무 태권도팀 선수, 미국 유학생, 태권도 지도자, 텍사스 지역사회의 한인 리더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의 중심에는 줄곧 태권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강일에게 태권도는 단순히 발차기와 품새를 가르치는 무술이 아니었다. 사람을 교육하고, 지역사회를 연결하며, 미국 사회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하나의 언어였다.

 

2026년 미국 연방하원에서 9월 4일을 ‘태권도 대사범 감사의 날(Taekwondo Grandmasters Appreciation Day)’로 기리는 결의안이 발의되면서 그의 삶 역시 다시 조명할 만하다.

 

결의안이 말하는 ‘Grandmaster’의 역사는 거대한 국제대회장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 곳곳의 작은 도장에서 하루하루 아이들을 만나고,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태권도의 정신을 가르쳤던 수많은 사범들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강일은 바로 그 세대를 살아온 태권도인이다.

 

태권도 소년, 대한민국 대표 선수의 길을 걷다

 

이강일의 고향은 충남 논산이다.

 

그는 어린 시절 태권도와 인연을 맺은 뒤 선수의 길을 걸었으며 한양대학교 체육대학을 졸업했다. 대한민국 해병대 태권도 대표선수단을 거쳐 국군체육부대 상무 태권도팀 창단 멤버로 활동하는 등 엘리트 선수로서 태권도의 기본기를 다졌다. 과거 공개된 이력에는 서울지하철공사 태권도팀 등에서도 활동한 것으로 기록 (한인역사박물관)되 있다.

 

그에게 태권도는 처음부터 직업이기 이전에 삶의 규율이었다.

 

예의와 인내, 자기통제와 불굴의 정신을 몸으로 배우는 과정이었다. 훗날 그가 미국에서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면서 경기 기술보다 인성교육을 강조하게 된 뿌리도 이 시기에 형성됐다.

 

15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1989년, 이강일은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당시 태권도 지도자의 길을 넓혀가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연합뉴스와 과거 인터뷰 기록에는 그가 1,500달러를 들고 미국 테네시로 유학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이후 미국에 정착했고, 1990년부터 전문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본격적인 미국 태권도 보급에 나섰다. 

 

오늘날 해외 유학이나 이민은 익숙한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한국인 태권도 사범이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미국 사회에 정착해 도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만나는 미국인들에게 태권도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했고, 수련생 한 명 한 명을 직접 가르쳐야 했다. 도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술 실력뿐 아니라 교육자, 경영자,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신뢰를 얻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씩 쌓인 시간이 30년을 훌쩍 넘어섰다.

 

텍사스 킬린, 태권도 인생의 두 번째 고향

 

이강일의 미국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텍사스 킬린(Killeen)이다.

킬린은 미 육군의 대규모 군사기지가 자리한 도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군인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곳에서 태권도는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가 됐다. 공개된 기록(한인역사박물관)을 보면 그는 킬린 지역에서 U.S. Taekwondo College를 운영하며 태권도 교육을 펼쳤고, 교육구와 연계한 인성교육 프로그램과 미군 관련 태권도 행사에도 참여했다. 미군기지와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태권도 시범과 문화행사를 진행하며 한국 태권도를 알려왔다.

 

그가 가르친 것은 발차기의 높이만이 아니었다.

 

수련생에게 인사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알려주며,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나는 법을 가르쳤다. 태권도장의 역할을 ‘강한 사람’을 만드는 데서 끝내지 않고 ‘바른 사람’을 만드는 교육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다.

 

야구장에서도 울려 퍼진 태권도 기합

 

이강일의 태권도 활동은 도장 안에 머물지 않았다.

 

1991년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 구장에서 태권도 시범을 선보였으며,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 구장에서도 한국 문화를 알리는 태권도 시범과 ‘한국인의 날’ 행사에 참여했다. 특히 2014년 텍사스 레인저스 구장에서 진행된 시범이 현지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후속 행사로 이어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수만 명의 미국 관중 앞에서 도복을 입은 태권도인들이 보여준 품새와 격파는 하나의 스포츠 공연을 넘어섰다. 태극기와 태권도, 그리고 ‘Korea’라는 이름이 미국인의 일상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오늘날 K-POP과 K-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익숙해졌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해외 태권도 사범들은 도복 한 벌을 입고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었다.

 

그들은 일종의 민간 외교관이었다.

 

미국 도시가 ‘이강일 사범의 날’을 기념하다

 

지역사회에서 그의 활동이 쌓이면서 의미 있는 기록도 만들어졌다.

미국 텍사스 Copperas Cove에서는 이강일 사범의 태권도 활동과 지역사회 공헌을 기리는 날이 선포되기도 했다. 과거 공개 기록(한인역사박물관)에는 매년 8월 1일을 그를 기리는 날로 지정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한 도시가 한 명의 한국인 태권도 사범을 공식적으로 기린다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명예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가 가르친 태권도가 미국 지역사회에서 하나의 교육문화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태권도 사범에서 한인사회 리더로

 

시간이 흐르면서 이강일의 역할도 넓어졌다.

 

태권도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는 한인사회와 지역사회의 여러 역할을 맡았다. 과거 킬린한인회장과 킬린상공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태권도 관련 여러 단체에서도 활동했다. 

 

2026년에는 제40대 킬린한인회장으로 활동하며 다시 한인사회 봉사의 일선에 섰다. 3·1절 기념행사를 비롯한 지역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인회 운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분야별 자문체계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태권도 사범과 한인회장은 겉으로 보면 서로 다른 역할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강일에게는 하나의 연장선이다. 태권도가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었다면 한인회 역시 동포를 연결하는 일이다. 도장에서 배운 리더십을 지역사회에서 실천하는 셈이다.

 

“평화와 봉사, 박애의 정신을 태권도로”

 

그의 활동 범위는 미국 한 지역을 넘어 미주 태권도 네트워크로도 확대됐다.

 

세계태권도평화연맹은 현재 이강일을 미주총괄본부회장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그는 태권도를 통해 평화와 봉사, 박애 정신을 구현하고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2025년에는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세계태권도한마당에서 태권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수상을 개인의 성취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세계 태권도 발전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는 취지의 소감을 전했다. 

 

수십 년간 태권도를 해온 사람에게 상과 직책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다음 세대다. 자신이 배운 것을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지, 후배 사범들이 어떤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인지가 더 큰 관심사가 됐다.

 

미 연방하원에 올라간 ‘Grandmaster’

 

2026년 9월, 미국에서 상징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

 

브라이언 피츠패트릭 공화당 하원의원과 매들린 딘 민주당 하원의원이 9월 3일 미 연방하원에 H.Res.1510을 제출했다. 결의안은 2026년 9월 4일을 ‘Taekwondo Grandmasters Appreciation Day’로 기리는 데 대한 연방하원의 지지를 표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하원 감독·정부개혁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로, 최종 의결된 기념일은 아니다. 

 

결의문에는 태권도가 예의, 정직, 인내, 자제, 불굴의 정신을 강조하며 미국 사회의 많은 사람에게 신체적·정신적 도움을 주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전 세계 약 8천만 명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으며 ‘Grandmaster’가 오랜 경험과 높은 경지를 갖춘 태권도인을 가리킨다는 점도 명시됐다.

 

이강일에게 이 결의안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 자신이 바로 미국 땅에서 수십 년 동안 태권도를 가르쳐 온 대사범 세대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태권도를 만든 선배들을 기억해야 한다”

 

이강일 사범은 이번 움직임에 대해 미국 의회에서 아직 최종 통과된 것은 아니지만 ‘Grandmaster Day’를 기리는 결의안이 연방하원에 제출됐다는 사실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평생 미국에서 태권도를 가르쳐 온 대사범들의 역사가 이제 미국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시선을 대한민국으로 돌렸다.

“국내는 물론 해외 각국에서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인 태권도를 전파하며 국위 선양에 앞장서 온 선구자들의 헌신에 이제는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도 깊은 관심을 갖고 제도적인 지원과 예우를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해외 태권도 사범의 삶은 화려한 국제대회의 메달 기록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 명의 아이에게 처음 태권도 띠를 매어 주고, 부모와 상담하고, 지역 행사에서 태권도 시범을 준비하고, 미국 사회에서 ‘Taekwondo’라는 생소했던 단어를 알리는 데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강일은 바로 그 현장을 지나왔다.

 

도복 한 벌로 시작된 민간외교

 

1989년 미국으로 건너갔던 한 태권도 선수는 이제 미국 텍사스에서 ‘Grandmaster’로 불린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크게 변했고 태권도 역시 올림픽 스포츠를 넘어 세계인이 공유하는 문화가 됐다. 하지만 세계화의 시작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해외의 작은 도장에 태극기를 걸었던 사람, 미국 아이에게 “차렷, 경례”를 가르쳤던 사람, 지역축제와 학교, 군부대와 스포츠 경기장에서 태권도를 보여준 사람들이 있었다.

이강일의 이야기는 그런 해외 태권도 사범 1세대의 역사와 겹친다.

 

그가 강조해온 것은 거창하지 않다. 강함에는 절제가 필요하고, 기술에는 인격이 따라야 하며, 지도자는 결국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 연방의회에서 ‘태권도 대사범’이라는 이름이 공식 결의안의 제목에 등장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성취가 아니다.

 

수십 년 전 낯선 미국 땅에 도장을 열고 묵묵히 사람을 가르쳤던 수많은 태권도인들이 하루하루 쌓아 올린 시간의 결과다. 그리고 텍사스 킬린에서 여전히 도복을 입고 후배와 지역사회를 바라보는 이강일 대사범의 삶도 그 역사 한가운데 놓여 있다.

 

“오늘의 태권도를 있게 한 선구자와 선배님들의 오랜 헌신과 노고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에게 태권도는 아직 끝나지 않은 수련이다.

 

제자를 키우는 일에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로, 그리고 다음 세대가 걸어갈 길을 만드는 일로 그 수련은 계속되고 있다.

자료제공: 이강일 텍사스주 칼린 한인회장
자료편집: 임만택 한국아트넷뉴스 대표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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