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의 그림이야기 19] 눈물겹도록 아름다움을 담은 연꽃_ 황연숙

연(蓮)은 수생식물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상은 논이나 늪지의 진흙 속에서도 자라는 식물이다. 꽃이 아름답고 향도 좋다. 모네가 자주 그린 수련과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수련은 잎이 상대적으로 작고 수면에 바짝 붙어서 나오지만 연꽃은 잎이 크고, 수면 위로 튀어나와 있다는 것으로 구분된다.
연꽃은 색상이 다양하다. 분홍색 계통의 홍련, 흰색 계통의 백련, 노란색 계통의 황련, 파란색 계통이라고는 하는데 실은 보라색에 가까운 청련 등이 있다.
연잎은 물을 튕겨내는 성질이 있어 어느 정도 빗물이 차면 빗물을 아래로 떨어뜨린다. 또 흙탕물이 묻지도 않는데 과학자들은 이러한 성질을 가진 연잎의 구조를 연구하여 절대로 젖지 않는 식기와 옷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평범한 연잎도 사람 얼굴을 가릴 만큼 크지만 잘 큰 연잎은 물 밖으로도 사람 키를 훌쩍 넘기고 잎사귀는 우산으로 써도 될 만큼 크다.
연꽃의 씨앗은 생명력이 대단하기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발견된 1,000년 묵은 씨앗이 발아된 적도 있고 일본에서는 2,000년 묵은 씨앗이 발아했으며, 우리나라에서 700년 된 연꽃 씨앗이 발아하였는데 이 연꽃은 아라홍련이라고 불린다. 연꽃 씨앗이 오래 견디는 능력도 경이롭지만 발아하는 속도 또한 경이롭다. 연꽃이 발아하는 순간 순식간에 자라나서 습지 전체를 덮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서식지가 육지가 되기 직전의 늪지이다 보니 오랫동안 살 수 없지만 대신 엄청난 내구도의 씨앗을 한 번에 많이 뿌려 기회를 도모하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꽃이 한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는 최소 삼국시대나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나 신라의 기와 장식, 고구려의 고분벽화 등 여러 곳에서 연꽃의 문양이 발견되고, 전술했듯이 우리나라의 연구진이 기존의 700년 된 연꽃 아라홍련을 넘은 1200년 된 연꽃의 씨앗을 발아시킨 적도 있다.
진흙탕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이 피고 흙탕물이 묻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인지 동양 문화권에서는 연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인도에서도 연꽃은 중요한 상징인데, 베다 시기부터 연꽃은 신의 상징으로 통하여 힌두교의 브라흐마는 연꽃에 앉은 형상이고, 비슈누의 지물 중에는 연꽃 봉우리 모양을 한 몽둥이가 있다.
불교에서 연꽃은 더더욱 중요시되며 사실상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절에 가서 불상을 보면 그 대좌(대좌는 부처가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앉았던 풀 방석에서 유래되었다)가 연꽃 모양이다. 진흙 속에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을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전승도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전승으로 마야 왕비가 싯다르타를 잉태할 때 꿈에서 하늘에서 여섯 개의 이빨을 황금으로 치장한 하얀 코끼리가 코로 연꽃을 들고 와 그녀 주위를 세바퀴 돈 다음 그 연꽃을 건네줬다던가 하는 식이다. 그 외에도 불교의 가르침과도 연계된 전승이 있는데 흔히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그저 연꽃만 들고 앉아있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의아해했으나 오직 가섭존자 만이 그 뜻을 이해하고 웃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문에 불교계 학교는 연꽃을 교화(校花)로 정한 곳이 흔하다.
유교에서도 연꽃은 사랑받았다. 더러운 연못에서 깨끗한 꽃을 피우는 모습이 절개를 중시하는 선비들의 기풍과 잘 맞았기 때문이다.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는 연꽃의 모습을 군자의 덕에 빗대는 '애련설(愛蓮說)'이라는 글을 남겼다.
우리나라 설화 중에는 심청전에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뜨려고 바다에 몸을 던지자 용왕이 기특하게 여겨 심청이를 연꽃에 태워 황제를 만나게 하여 황후가 되다는 이야기도 있다.
연꽃에 관계되는 사자성어도 많은 데 그중의 하나를 소개하자면 본체청정(本體淸淨)이란 말이 있다. 본체청정은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는 말이다. 바닥에 오물이 즐비해도 그 오물에 뿌리를 내린 연꽃의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와 같아서 항상 청정한 몸과 마음을 간직한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연꽃의 본체청정(本體淸淨)의 특성을 닮은 사람이라 한다.
본 그림, '눈물겹도록 아름다움을 담은 연꽃'은 용인에서 활동하는 연꽃 전문 화가 황연숙 화가의 그림이다. 작품의 소재를 찾아 유명하다는 연못과 연꽃 재배지를 찾아다니며 숱하게 연꽃을 찾아다니며 연꽃을 보고 다녔지만 별 영감을 느끼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든 어느 날, 한 시골의 보잘것없는 작은 연못에 흐드러지게 핀 한 무리의 연꽃에 마음이 빼앗겨 작품으로 옮겨야겠다는 강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당시 복잡한 심리적 상태도 이 연꽃을 그려야겠다는 결정에 한몫을 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단순한 외면적 아름다움보다 작은 연못, 특히나 더러운 연못에서 연분홍의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모습에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며 다시금 마음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한다. 이 그림은 그런 상태에서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인지 황연숙 작가의 연꽃 그림은 아름답지만 왠지 슬픔과 또 그 슬픔을 승화시킨 해탈의 모습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일렁이는 물결은 고요를 찾고 있고, 그 위 오물에 뿌리를 내린 연꽃의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고 있다.
용인에는 와우정사라는 절이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와불(누워 있는 불상)이 봉안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이곳에 황연숙 작가의 연꽃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주지승인 해곡 스님은 "와우정사에 소장된 황연숙 작가의 그림이 많은 불자에게 마음의 청정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라며, 와우정사가 없어지지 않는 한 황연숙 작가의 연꽃 그림이 와우정사에서 "사찰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청정함을 얻게 하는 방편"이 될 것이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