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그들은 무대로 출근한다
영업, 기술, 교육, 유통. 하는 일이 제각각인 네 사람이 주말 저녁 홍대 어느 지하에 모인다. 좋아하는 밴드의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보기 위해서다.

2015년에 결성된 직장인 밴드 '프로젝트9'은 올해로 11년차를 맞았다. 기타 김능환(49·영업직)과 김규동(49·기술직), 베이스 반종혁(39·교육직), 드럼 권오현(49·유통업). 평균 연령 46.5세의 이 4인조는 밴드연합 '뮤직메이트' 소속으로 홍대 클럽 일대에서 여러 차례 합동공연을 치러왔다.
시작은 학교 밴드 동아리였다. 김규동과 권오현이 같은 동아리 동기였고, 김능환은 친구의 친구로 이어졌다. 베이스 반종혁은 나중에 밴드연합에서 만나 팀에 들어왔다. 동아리방에서 소리를 맞추던 두 사람이 마흔이 넘어 다시 같은 무대에 선다.
같은 마디를 수십 번
음악은 어디에나 있다. 출퇴근길에, 카페에서, 유튜브에서. 대부분은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들은 듣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좋아하는 곡을 직접 연주하는 즐거움." 프로젝트9이 가장 먼저 꼽는 말이다. 그 즐거움의 실체는 완성되지 않은 것을 오래 붙들고 있는 시간이다. 같은 마디를 수십 번 반복한다. 멤버들은 "조금씩 늘어가는 연주 실력에 대한 재미"를 두 번째 즐거움으로 꼽는다. 실적도 승진도 아닌 단위로 무언가가 나아지는 경험은 흔치 않다.

레퍼토리는 헤비메탈 커버 위주다. 멤버들이 젊은 시절 듣던 곡들이 주말 저녁 홍대 지하에서 다시 울린다.
심리학에는 '회상 절정'이라는 개념이 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들은 음악의 선호가 이후 수십 년간 가장 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 시기의 음악은 취향이기 전에 자아가 형성되던 시절의 배경음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맞춘 곡은 무대에서 확인한다. 뮤직메이트의 합동공연에는 매회 10팀 내외가 오르고, 공연장 대관료는 참여 팀들이 나눠 낸다.
밴드는 계약도 평가도 없는 조직이다. 각자 시간을 내고, 각자 연습하고, 각자 대관료를 낸다. 회사의 협업이 책임과 권한으로 지탱된다면, 여기서는 자발적인 신뢰뿐이다. 하버드대 로버트 퍼트넘은 『나 홀로 볼링』에서 미국인들이 함께하던 모임에서 점차 멀어지는 현상을 짚었다. 프로젝트9의 11년은 그 흐름의 반대편에 있는 사례다.
사회에서 실수는 곧 비용으로 이어진다. 이 무대에서는 코드를 놓쳐도 웃고 넘어간다. 성인이 안전하게 실패해볼 수 있는 자리는 생각보다 드물다.
마흔이 넘은 사람이 스스로를 직함 이외의 무엇으로 설명할 언어를 갖는다는 것. 그것이 이 밴드가 11년간 유지된 이유에 가깝다.

이 활동의 사회적 의미
멤버들이 꼽는 마지막 즐거움은 "지친 삶의 활력소 또는 스트레스 해소"다. 이 진술은 개인의 소감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지역사무처가 2019년 발간한 보고서는 합창과 합주 같은 집단 음악 활동이 우울과 사회적 고립을 완화한다는 연구들을 정리하고 있다. 영국은 이를 '사회적 처방' 제도로 만들어 의사가 약 대신 합창단이나 지역 모임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퇴직과 함께 인간관계가 통째로 사라지는 한국의 중년 직장인에게 직장 바깥의 관계망은 특히 중요하다.
이런 활동에는 공간이 필요하다. 합주실과 악기점, 소규모 라이브클럽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의 대관비로 유지된다. 프로젝트9처럼 대관료를 나눠 내며 무대를 만드는 밴드들이 그 기반을 떠받치는 셈이다. 홍대 일대의 작은 공연장들이 임대료에 밀려나는 문제가 개별 업소의 폐업을 넘어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계획은 없지만, 대기중"
향후 계획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한 뒤 해산하는 조직이 아니다. 해체하지 않는 한 언제든 다시 무대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로 11년을 보냈다.
다음 무대가 언제일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정해지면 그들은 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직접 만든 무대 위에서, 젊은 시절 사랑했던 곡의 첫 소절을 맞추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