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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의 시조 읽기 19 】 김선호의 "3호선 옥수역"
문학/출판/인문
[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19 】 김선호의 "3호선 옥수역"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3호선 옥수역 / 김선호 이미지: 강영임 기자
3호선 옥수역 / 김선호 [이미지: 강영임 기자]

3호선 옥수역

 

김선호

 

한 열흘 퍼붓던 비 잠깐 쉬러 간 사이

참았던 숨 내뿜으며 햇살이 고개 민다

어둠이 익숙할 즈음

손 내미는 하늘 문

 

황혼에 글을 깨쳐 더듬대는 소리들이

죗값을 다 치르고 출소하는 다짐들이

안대를 벗다가 말고

눈이 부셔 찌푸린다

 

질끈 감은 양심이나 애써 숨긴 욕심이나

제 발이 절로 저려 엉겁결에 고해하는

옥수玉水에 닿기만 하면

표백되어 맑아지는

 

『자유를 인수분해하다』 (2025. 고두미)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은 유일하게 지상에 있는 역이다. 다른 역들이 어둠 속을 달릴 때, 이곳은 햇살을 맞는 곳이다.

 

김선호 시인의 「3호선 옥수역」은 지하철 3호선인 옥수역을 배경으로 옥수를 중의적인 의미로 가져왔다. 옥수는 옥처럼 맑은 물을 뜻하는 옥수(玉水)와 옥에 갇힌 사람을 의미하는 옥수(獄囚)가 있다. , 하나의 단어를 외적인 풍경과 내적인 변화를 겹치게 설정하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장소를 성찰과 회복의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첫째, 둘째 수에서는 어둠의 시간, 고통의 시간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 열흘 퍼붓던 비도 햇살이  비추면서 회복의 조짐이 보인다. 누구에게나 살다보면 힘든 시간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도 어느 시점이 되면 손 내미는 하늘 문처럼 햇살이 찾아든다.

 

평생 글을 몰라 답답하게 살다 황혼에 글을 깨우친 이나, 죗값 다 치르고 옥에서 출소한 이도 모두 수인(囚人)이다. 어둠을 견디고 나온 이들은, 눈부신 세상의 빛 앞에서 반갑지만 두렵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어둠 속에 갇힌 옥수. 양심을 감고 살아온 날, 욕망을 들키지 않으려 숨겨온 날들, 제 발 저려 엉겁결에 토해내는 고해들 그것은 죄라기보다 불안전한 사람됨의 흔적들이다.

 

옥수역은 단순한 환승역이 아니다. 그곳은 삶의 한 부분에서 우리가 반성하고 회복을 시작하는 곳, 다시 살아보려는 희망의 문일 것이다. 감췄던 마음 하나쯤 씻고 싶은 날, 옥수역에 가보면 어떨까.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 기자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 코너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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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시인#옥수역#강영임시조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