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51] 이복현의 "선물"외 1편
선물 외 1편
이복현
내가
내가 너에게
무엇인가 좋은 것 한 가지를
주고 싶고 또한
줄 수 있다면
영롱한,
물푸레 푸른
눈물 같은 슬픔을 주리
천년 가도 녹슬지 않는
별과 같은 사랑을
가슴에 브로치로 달아 주고 싶어
영원히 꺼지지 않을
네 혼 속의 등불로,
옥잠화를 보며
양반집 규수 한 분 봄뜰로 나신다
옥비녀 살짝 꽂은 뒤태 고운 낭자머리
담 넘은 산들바람이 옷고름을 당긴다
앞가슴이 열리면서 미동을 할 때마다
폴폴 날리는 살내음에 혼절할 것 같은데
옥잠화, 그 맑은 눈빛이
내 발길을 붙잡네
심술궂은 봄바람이 치마폭을 살짝 걷어
희고 맑은 속살이 환히 드러날 때면
아찔한 현기증으로 한 목숨이 무너진다
―『슬픔도 꽃이 되어 저 환한 햇빛 속에』(태학사, 2000)

[해설]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오늘은 발렌타인데이입니다. 발렌타인데이는 연인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날이라고 하지요. 원래는 3세기 로마의 성인 발렌티누스를 기리는 날에서 유래했지만 언제부턴가 연인끼리 초콜릿이나 선물, 카드 등을 주고받는 기념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체로 2월 14일 오늘은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고 3월 14일 화이트데이는 남성이 답례하는 날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양의 풍습이 이 땅에도 들어와 연인들은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지요.
오늘은 토요일이라 시조를 평하는 날인데 발렌타인데이에 적합한 작품이 있나 한참 찾아보았습니다. 이복현 시조시인이 2000년에 낸 시조집에 실려 있는 시조 중에 애끓는 남녀상열지사를 노래한 것이 있어 다뤄볼까 합니다.
「선물」의 첫째 수는 완전 파격입니다. 3434 3434가 아니라 254765이기에 사설시조도 아니고 자유시로 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종장은 3545로 형식을 지키고 있습니다. 두 번째 수에서는 시조의 모습을 약간 되찾았네요. 이 시조의 내용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내 이 가슴앓이를 그대에게 선물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시조의 화자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면, “천년 가도 녹슬지 않는/ 별과 같은 사랑을/ 가슴에 브로치로 달아 주고 싶어” 합니다. 아아, 거기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네 혼 속의 등불”이 되겠다니, 이런 선물은 저도 죽기 전에 어느 여인에게 바치고 죽고 싶습니다.
「선물」의 소재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재질을 갖고 있는 물푸레나무입니다. 목재는 단단하고 탄성이 좋아 예로부터 병기를 만드는 데 주로 쓰였고, 특히 이 나무로 곤장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현대에도 농기구, 공구의 자루, 가구로 자주 이용된답니다. 야구방망이가 되기도 했지요. 이파리 색깔은 선명한 초록이라서 시인의 말마따나 영롱하고 푸른 눈물 같아 보입니다.
「옥잠화를 보며」는 읽는 동안 가슴이 후들거려 해설의 말을 쓰지 못하겠습니다. 이 시조의 표현 방법이나 어조는 고풍스럽지만 그 내용은 꽤 심각한 짝사랑입니다. 왕조 시대 때나 30년 전쯤이나 먼발치에서 여인의 속살을 보고 가슴을 앓게 된 이들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희고 맑은 속살이 환히 드러날 때면/ 아찔한 현기증으로 한 목숨이 무너진다”고 했는데 어언 26년 전에 나온 시조집에 실려 있는 작품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이복현 시인이여, 여전히 이런 풋풋한 감정으로 살아가고 계시지요?
[이복현 시인]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1994년 중앙일보 제14회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1995년 《시조시학》 신인상으로 시조 등단. 1999년 제7회 대산창작기금(시 부문)을 받고서 그해 《문학과의식》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 쓰기를 같이 하고 있다. 작품집으로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슬픔도 꽃이 되어 저 환한 햇빛 속에』와 『눈물이 타오르는 기도』가 있으며, 시집으로는 『사라진 것들의 주소』 등 4권이 있다. 시조시학상(본상), 아산문학상(시) 등을 수상. 대산창작기금 및 서울문화재단, 충남문화재단의 지원금 수혜.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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