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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58] 주영숙의 "난설헌"

이승하 시인
입력

난설헌

 

주영숙

 

사시나무 소소리바람

두 무덤에 불어대고

숲 속 도깨비불도 구슬피 반짝일 때

비단 발

걷어 올리면

은 침상이 비었던 걸

 

딸 잃고 아들 잃고 오빠마저 갑산 보내고

갈가마귀, 먼동에 놀라

까악까악 울 적엔

불처럼

피어오르며

꽃처럼 웃음 치던 걸

 

저녁해에 불 질러 산등성에

구름이 타고 불사조,

구름수레 몰아

쫓겨가듯이

이십칠 꽃다운 여인

무등 태워 들던 걸.

 

―『손톱 끝에 울음이…』(고요아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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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동상

  [해설]

 

  조선 중기 때의 여성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의 생애를 모르면 이 시조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작품의 첫째 수는 그녀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이른 죽음을, 둘째 수는 허 시인의 불행과 집안의 불행을, 셋째 수는 짧게 살고 갔지만 시를 썼기에 불사조가 되었음을 들려준다. 3수로 된 시조인데 허난설헌의 생애가 아주 잘 압축되어 있다. 이를 풀어서 살펴보자.

 

  본명은 초희(楚姬)고 난설헌은 아호(雅號). 허엽의 딸이며, 허봉의 동생이고, 허균의 누나다. 초희는 강릉에서 출생했다. 허엽은 서경덕의 제자로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 홍문관 부제학 등을 지낸 고관대작으로 한양의 건천동에 살고 있었다. 안동 김씨 집안의 교리(5) 김첨은 옥인동에 살고 있었는데 아들 김성립을 두고 있었다. 그 당시에 연애결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아버지가 점지하면 그것으로 혼처가 정해지는 것이었다. 궁궐에서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던 허엽과 김첨은 자식들의 혼인을 결정한다. 그래서 초희는 14세가 되던 1577년에 혼인하게 되는데 이것은 행복 끝 불행 시작이었다.

 

  초희는 시인, 문장가로 이름이 높은 형제들 사이에서 시에 대해 높은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당시 문명을 떨쳤던 서얼 이달에게도 시를 배웠다. 어려서부터 시적 천품과 재주가 뛰어나 인근에서는 여자 신동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른 결혼은 그녀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시집온 여자가 붓을 들고 시를 쓰고 있으면 환영할 집이 있을 리 없던 시대였다. 하지만 초희는 시작에서밖에 기쁨을 얻을 수가 없었다. 붙임성 없는 성격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편과 시집 식구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것 같다. 남편은 과거시험에 계속해서 낙방하니 아예 각방을 쓴다. 시조의 첫째 수가 이 내용이다.

 

  하지만 어떻든 초희는 임신을 했고 첫 번째 자식인 딸과 두 번째 자식인 아들을 차례로 병으로 잃는다. 세 번째 들어선 자식은 유산이 되고 만다. 이 일들을 며느리의 부덕으로 간주한 시어머니의 질타가 죄없는 초희에게 쏟아진다. 친정집의 불행은 그녀를 더욱더 괴롭힌다. 아버지가 부임지 상주에서 객사한 것은 그렇다 치고, 오빠 허봉은 귀양 가서 죽는다.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동생 균도 당쟁에 휘말려 걸핏하면 귀양을 간다. 시조의 둘째 수는 이 내용을 압축한 것이다.

 

  그녀는 삶에서 오는 고뇌를 붓으로 달래면서 많은 시를 지었는데, 현재 200여 수가 남아 전해지고 있다. 「규원(閨怨)」「감우(感遇)」「추한야좌(秋寒夜坐)」 등과 같이 규중 속 여인으로서의 불행했던 삶에 대한 고통을 표현한 작품들도 많았다. 「곡자哭子」 같은 작품은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비통한 심경을 절절히 표현한 작품으로서 작품성이 뛰어나다. 도교의 신선사상에 심취해 다수의 시를 남겼는데 추측해보면 시어머니의 학대와 남편의 무관심, 시집 식구들의 질시가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현실초월적인 신선사상에 심취한 것일지도 모른다. 환상의 세계에서는 행복했고 현실에서는 불행한 여인이었던 초희는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병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시름시름 앓다 사망한 것이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3수는 시인이 초희의 혼을 하늘로 보내는 한 판 굿이다.

 

  [주영숙 시인]

 

  1949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고 세 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였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서울에서 그녀는 작은 수예점에 취직해 허드렛일을 하다가 손재주가 있는 것을 안 주인이 동양자수를 놓도록 하였다. 그때의 경험으로 그림을 시작하여 한국화 부문에서 세종미술대상전 동상을 받은 한국화 화가이고, 대한민국전통공예대전에서도 입상한 전통공예가이다. 1989년 육필시집 『가을 시인에게』를 출간했다. 1990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내일은 죽을 수 없는 여자』로 소설가로도 출발하였다. 49세에 대학에 입학하여 학사, 석사를 거쳐 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경기대학교 등에서 외래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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