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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47】 된장 족보

시인 김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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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족보

김선호 

 

  큰집은 휑한 설날 먹자골목 북적댄다

 

  명절 차례 없애고 기제사도 한데 묶고 변해가는 풍속 따라 촐랑촐랑 좇다 보니 멀어진 조상님만큼 우애도 뜨악하데이 밥이나 모여 먹자고 형제자매 불러놓고 설날 맞춰 들른 식당에 된장 맛이 일품이라 음식은 장맛이라며 찬사가 넘치는디, 뜬금없이 족보 들춰 찬물을 끼얹나니 된장이 누구드나 간장과는 남매 아니가 그 아비 메주려니와 어미는 곧 소금인 기라 뭉개진 메주 좋다고 살던 바다 작별하고 낭군을 만나자마자 항아리로 뛰어들어 죽기로 빚어낸 자식이 된장과 간장이라 그 조부인 흰콩은 종갓집 종손이라서 꼬투리에 숨어 살며 애면글면 지킨 몸을 대는 꼭 이어야 한다며 끓는 물에 던졌니라 한 층 위에 증조부는 창조주나 한가지나니 뙈기밭 구석구석 애지중지 보듬으며 조부가 구실 하게끔 피땀 흘려 키우셨니라

 

  호주제 없어졌다고 조상까지 잊으면 쓰나!

된장담그는 사진(사진출처-우리사는세상)
된장 담그는 사진(사진출처-우리 사는 세상)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은 섬뜩하다. 장맛과 집안의 길흉을 연계하는 게 생뚱맞기는 한데, 모든 음식에 간을 맞추는 장이 그만큼 중요해서 생긴 속담일 터다. 조상들은 장을 담그는 날이면 몸을 단정히 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삼갔다고 한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속담은, 외양은 보잘것없어도 내용물이 훌륭할 때 등장한다. 겉치레보다 실속이 낫다는 뜻이거늘, 하필 장맛을 불러냈을까? 그만큼 장이 식생활에 으뜸 역할을 하기 때문일 터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느니, 묵은 장맛이 좋다느니 하는 속담들에서도 장맛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정월 장이 좋다고, 설 쇠자마자 장 담그기가 시작됐다.

 

장 담그는 주재료는 메주와 소금이다. 물론 물이 필요하고 풍미를 살릴 숯, 대추, 마른 고추도 들어간다. 항아리에서 일정 기간 숙성되면 메주를 꺼내 된장을 가르는데, 이때 소금물은 간장이 된다. 조리할 때 쓰이는 간장과 된장이 그렇게 탄생한다. 계보를 따지자면 농부가 흰콩을 키워내고, 흰콩으로 메주를 빚고, 메주는 소금과 결합하여 된장과 간장으로 숙성되는 것이다.

 

설날마저도 식당가는 붐빈다. 차례 준비로 붐빈 명절특수는 명절 연휴로 옮겨갔다. 동네 어른들 찾아 세배하던 고유문화도 추억이 됐다. 시대의 흐름이니 어쩌랴. 둘러앉아 떡국 먹으며 시끌벅적해야 할 설날에 뜬금없이 된장 족보나 들추다니, MZ세대 눈살이나 찌푸릴 꼰대가 틀림없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김선호 시인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

시인 김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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