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해설] 권갑하의 "사랑은 기다림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64]
사랑은 기다림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입니다
권갑하
우리 사랑,
단 한 번의 기회임을 믿습니다
하고많은 사람 중에
오직 한 사람 당신이듯
당신을 사랑하는 건
사랑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기다리는 것처럼
가슴 아픈 일도 없습니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갑자기 그대가 오듯
사랑은
기다림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입니다
―『누이감자』(알토란북스, 2015)

[해설]
사랑은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 땅의 시조시인 중 따뜻한 사랑, 포근한 사랑의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른 이로 권갑하 시인을 꼽고 싶다. 「사랑을 위한 기도」「그런 사랑」「사랑의 슬픔」「물방울 속의 사랑」「눈먼 하루살이의 사랑」「우리 사랑」 등이 다 절창인데 그중 이 시를 꼽은 것은 사랑은 ‘용기’라는 것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목순옥이 천상병 시인에게 청혼한 것은 용기가 있어서였다. 야마모토 마사코가 현해탄을 넘어 원산의 이중섭을 찾아간 것은 용기가 있어서였다.
사랑은 기브 앤드 테이크가 아니다. 기브 앤드 기브 앤드 기브이다. 김유정은 박녹주에게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연애편지 끝에 혈서를 썼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계산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저 사람의 연봉과 부모의 재력을 재는 것이 어떻게 사랑일까. 이두(吏讀)를 창제한 설총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가. 요석공주는 스님 원효에게 고백하였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 사랑한다고. 원효가 파계한 뒤에 자기를 부수지 않았다면 그 엄청난 저작들이 탄생했을까? 여왕을 사랑했기에 혼불이 된 사내 얘기가 『삼국유사』에 나온다.
시인의 말이 옳다. 당신을 사랑하는 건 사랑받기 위함이 아니라고. 그렇다. 사랑을 주기 위해서라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계산하고 따지고 의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런 이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 “사랑했기에 나는 기꺼이 세상을 떠난다”(루이제 린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헬렌 니어링),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김광석)……. 이런 사랑을 권갑하 시인은 부정한다.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멋지다.

찾아가는 것입니다
- 권갑하
[권갑하 시인]
195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2년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었고 나래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한국시조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시조집 『아름다운 공존』『외등의 시간』『세한의 저녁』『단 하루의 사랑을 위해 천년을 기다릴 수 있다면』 등과 저서 『현대시조 진단과 모색』『왕건과 떠나는 문경새재 답사여행』 등을 펴냈다. 나래시조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농민신문사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