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동시 해설] 세 어린이의 동시조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동시 해설] 세 어린이의 동시조

이승하 시인
입력
수정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07]

엄마의 잔소리

 

김지호(여수 송현초 5학년)

 

엄마의 잔소리는 길고 긴 터널이죠

잔소리 들을 때마다 튕겨져 나가려다

엄마의 레이저 눈빛 피하지를 못해요

 

오늘은 소프라노 내일은 알토음으로

높낮이 다르지만 엄마의 잔소리는

내 꿈을 피워주시니 옴짝달싹 못해요

 

선인장

 

박수연(충주 북여자중 1학년)

 

뾰족뾰족 만지면 따가운 선인장

뜨거운 사막에 열기를 견디느라

잎사귀 넓적한 모양에서 따끔한 바늘로 뿅!

 

하지만 속살은 누구보다 부드러워

겉모습은 뾰족뾰족 내면은 말랑 부들

사람도 겉모습 보고는 판단하면 안 되나 봐

 

시험

 

연하은(충주 예성여자중 3학년)

 

쿵쾅쿵쾅 오늘은 기다리던 중간고사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로 향한다

드디어 시험이 시작됐고 하나하나 풀어간다

 

이틀이 지나고 드디어 시험 끝!

새장에서 풀려난 새 같은 내 모습

시험아, 끝났으니까 한 며칠은 절교하자

 

ㅡ『어린이 시조나라』(한국시조시인협회, 2025년 상반기호)

 

선인장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해설]

   어린이의 생각이 훌륭하니 얼마나 좋은지

 

  어느덧 31호가 나온 『어린이 시조나라』에는 어린이들이 쓴 시조 투고작을 심사해 좋은 시조를 뽑아 시상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 동시를 시조 형식으로 써본 경험은 아이들에게 글에 대한 자신감과 의욕까지 불어넣어 줄 것이다. 그리고 시조 혹은 동시 쓰기의 즐거움을 충분히 맛보게 될 것이다. 이들 중 훗날 시인이나 동시인으로 성장해 나갈 아이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김지호 학생은 엄마의 잔소리 듣는 일이 고역이다. 하지만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꾸짖는 것임을 지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엄마의 잔소리는 내 꿈을 피워주시기에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니 지호는 이미 철이 다 들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엄마의 잔소리도 정겹게 들릴 것이다.

 

  선인장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박수연 학생은 선인장과 사람을 동격에 놓고 이야기를 해나가기 시작한다. 가시가 돋아 있는 선인장을 만져보면 손가락이 따갑다. 그런데 선인장의 내면이 말랑하고 부드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 수의 종장 사람도 겉모습 보고는 판단하면 안 되나 봐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시험」을 쓴 연하은 학생은 시험 치는 것이 고역이다.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틀린 게 나온다. 시험 기간에는 잠도 충분히 못 자므로 입맛도 없고 기분도 영 상쾌하지 않다. 어떻든 시험이 끝나서 다행이다. 한 며칠 동안은 시험에서 벗어나 좀 놀았으면 좋겠는데 하은 학생은 그 심정을 시험아, 끝났으니까 한 며칠은 절교하자고 표현했다.

 

  이 3편은 동시지만 그와 동시에 시조이다. 자수도 잘 맞추고 있어 운율이 느껴진다. 3명 학생이 다 마음이 순하고, 옳고 그름의 차이를 확실히 알고 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시인이나 시조시인이 되면 좋겠다. 이미 아마추어의 경지를 벗어나 있으므로 앞으로 계속해서 시조를 쓰면 반드시 등단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쓰는 것!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승하시인#어린이시조#동시조해설#동시조#연하은#김지호#박수연#엄마의잔소리#선인장#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