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76] 노영임의 "시가 밥 먹여주나? "
시가 밥 먹여주나?
노영임
저, 혹시 원고료는요?
잡지사 원고청탁에
속물이 될까 몰라 한 번도 묻지 않는다
그까짓
돈 한두 푼에
영혼을 팔 수야 없지
이제껏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게 어디람
세상에 순수한 건 시뿐이라 위로하며
시인은
이슬만 먹듯
소주잔 털어 넣는다
밤새워 시 한 편에 순정을 다 바친대도
그렇게 쓴 시가 밥 먹여주진 못해도
밥 대신
시가 먹히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어른들은 보아뱀을 모자라 한다』(고요아침, 2025)

[해설]
현대 시조의 신 경지
이 작품을 읽고 시조임을 파악한 사람이 많지는 않을 듯하다. 하지만 종장을 보면 3/5/3/5, 3/5/3/5, 3/5/5/3으로 시조의 자수를 잘 지키고 있으니 틀림없이 시조다. 첫수의 초장을 보면 “저, 혹시 원고료는요?”라는 대화체이고 둘째 수의 초장을 보면 “이제껏 잊지 않고 기억해 준 게 어디람”이라는 독백체이다. 셋째 수의 초장도 우리가 익히 봐 왔던 시조의 초장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노영임 시조시인은 시조의 현대화 작업을 한 시인 중에서도 일등공신이다. 거의 대부분의 시가 해학성과 골계미가 넘친다. 내가 외국문학 전공자라면 노영임의 시조를 두고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아이러니와 알레고리가 충만하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경험하지 않았을까. 원고청탁서에 얼마의 원고료를 준다고 명시하지 않고선 계좌번호를 쓰지 않으면 정기구독으로 돌리겠다는 문구를 보고 망설였던 것을.
‘계좌번호를 쓰면 다시는 청탁을 안 할 거야. 돈 밝히는 시인이라고 날 미워할지 몰라. 에라, 커피 몇 잔 덜 마시면 되지 뭐. 속물로 취급받지는 말자.’
받는 것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다. “시인은/ 이슬만 먹듯/ 소주잔 털어 넣는다”는 정말 절묘한 표현이다. ‘참이슬’은 하루 평균 몇 병이나 팔릴까? 밥 대신 시가 먹히는 그런 세상을 꿈꾸지만 그것은 단지 꿈일 뿐이고 현실은 원고료도 받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의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도 요즘엔 원고료를 제법 챙겨주는 문예지도 있다. 물론 그런 문예지에서 2, 3년에 한 번이라도 청탁이 오면 감격스러울 것이다.
최근에 모 출판사에서 내 시집이 달랑 한 권이 왔는데 그 안에 편지가 한 통 들어 있었다. 7월 25일에 재판 4쇄를 200부 찍었는데 책 정가가 1만 2,000원이니 인세를 24만 원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200권밖에 안 찍어? 하고 기분이 좀 찜찜했지만 초판도 3쇄를 찍었고 재판본도 어느새 4쇄를 독자들 덕분에 찍게 되었으니 출판사에 고마워할 일이었다. 독자가 시집을 도무지 안 읽는 이 시대에 그래도 도합 7쇄를 찍었으니 독자들에게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노영임 시인은 앞서도 말했었지만 시조의 현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분이다. 언뜻 보면 시조 같지 않은데 들여다보면 시조다. 흐름도 억지로 꿰어맞춘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구어체로 써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등단작은 5수로 되어 있는데 제1수만 보자.
뜨건 국밥 후후 불며 젖 물리고 앉은 여자
어린 건 한껏 배불러 빨다가 조몰락대다
꽉 쥐고 해살거리며 또글또글 웃는다
[노영임 시인]
1963년 충북 진천 출생. 충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서경중학교 교사를 거쳐 2025년 8월 말, 미원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한다.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젖 물리는 여자」로 등단하였다. 그 뒤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충북여성문학상, 충북시조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조집 『여자의 서랍』『한 번은, 한 번쯤은』이 있고 현재 충북시조시인협회장으로 있다. 이번에 낸 『어른들은 보아뱀을 모자라 한다』는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낸 시조선집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