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39】 이광의 "행幸이란 이름의 손님"
행幸이란 이름의 손님
이광
간절히 불러본들 선뜻 온 적이 없다
바라지도 않은 판에 씩 웃으며 나타난다
잘 왔다 반겨주었더니
그새 떠날 채비한다
《시조미학》 (2025. 가을호)

행운이 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아니다.
행(幸)은 뜻밖에 일이 잘되어 운이 좋은 것을 말한다. 명리학에서 운(運)이란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자 자연의 질서라고 말한다. 오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인간의 부름으로 얻을 수는 없으나, 바깥에서 찾아오는 것 또한 행운이다.
“바라지도 않은 판에 씩 웃으며 나타난다” 이 문장은 시의 전환점이자 운명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행운은 의도하지 않은 순간 삶의 틈새로 스며든다. 명리학에서는 이를 ‘귀인운(貴人運)’이라 말한다. 뜻하지 않은 시기에 예기치 않은 형태로 찾아오는 우연의 호흡과도 같다.
“잘 왔다 반겨주었더니 / 그새 떠날 채비한다” 행운은 머물기를 거부한다. 그것은 시운(時運)에 따라 왔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떠난다. 이것은 이별보다 질서에 가깝다. 시인은 행운의 떠남을 ‘채비’라 명명한다. 떠남마저도 삶의 필연적 절차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기운은 돌고 도는 순환의 원리를 따른다. 좋은 운이 지나가면 고요의 시간이 찾아든다. 행운의 부재 또한 불행이 아니라 다음 기운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하는 과정이다.
「행幸이란 이름의 손님」의 시는 단정하다. 불필요한 감정도 과잉도, 화려한 수사도 없다. 그러나 그 절제된 언어 속에는, 운명을 수용하는 고요한 서정이 숨 쉬고 있다. ‘손님’이라는 은유는 인간 존재의 실존적 임시성을 품고 있다. 우리도 이 세계의 손님이며, 행운 또한 우리의 삶에 잠시 들리는 기운일 뿐이다. 시인은 그 찰나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그 순간 이 시는 삶의 덧없음을 넘어 무위(無爲)의 철학 즉, 생하고 멸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순응하는 미학으로 나아간다.
행운은 우리가 붙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스쳐가는 빛이다. 그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다른 이름으로, 다른 시간 속에서 우리 곁에 돌고 돌 뿐이다.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