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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의 시조 읽기 18】김상규의 "불새잎눈"
문학/출판/인문
[ 강영임의 시조 읽기]

【강영임의 시조 읽기 18】김상규의 "불새잎눈"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불새잎눈 / 김상규 사진: 강영임 기자
불새잎눈 / 김상규 [이미지: 강영임 기자]

 불새잎눈

 

김상규

 

지나간 모든 것을 단번에 잊기 위해

수만 번 날갯짓하는 불새를 아시나요?

단 한 번 날아오르면 끄지 못할 섬광 같은

 

저 불티 잡아다 가슴에 품겠다고

몇몇은 빛을 따다 가지에 올렸지요

실패한 이야기들이 그물처럼 쌓였지만

 

우는 자의 밤이란 빈 새장 속 온기입니까?

텅 빈 줄 알았지만, 끝인 줄 알겠지만

아직도 두근거리는 나목 위의 심장들

 

『존 그리어 보육원의 불량 소년들』 (2025.문학의전당)

 


 

이집트 신화에 베누라는 신성한 새가 등장한다. 태양신 라의 심장에서 태어난 이 불새는, 상상의 동물이며 창조와 재생의 원형으로 신화 속을 날아다닌다.

 

김상규 시인의 「불새잎눈」은 삶과 꿈을 상징과 은유로 따뜻하게 포착하면서도, 깊은 사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 전반에 절망과 실패의 이미지가 자리를 잡고 있지만, 희망을 끌어올리는 역설적 정서가 시의 중심을 이룬다.

 

잎눈은 가지에서 자라날 새싹의 자리다. 그 작은 자린엔 아직 잎도 없고 줄기도 없다. 다만 자라야겠다는 꿈과 희망만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자리를 불새가 날아올라 잿더미에서 불티를 찾는다면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꿈이자, 얼마나 눈부신 희망인가.

 

우리는 종종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을 품고 산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나간 모든 것을 단번에 잊기 위해 수만 번 날갯짓하는 불새처럼 두려움을 잊기 위해 노력한 것들은 하나의 비상(飛上)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탄생이며 끄지 못 할 섬광이 된다. 사람들은 그 빛을 잡으려 손을 뻗고 가슴에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불꽃은 뜨겁고 바람은 늘 예고 없이 불어온다. 실패한 이야기가 그물처럼 쌓여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언젠가 또 하나의 날개가 돼줄 것이다.

 

우는 자의 마음에도 불새의 잎눈은 살아 있다. 아직 피어나지 못한 사랑 일수도, 끝난 줄 알았던 꿈의 마지막 불씨일 수도 있겠다. 끝없는 실패 끝에 움트는 심장의 미세한 떨림일 것이다. 그리고 그 떨림이야말로 우리 안에 깃든 진짜 불새일지도 모르겠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트뉴스 전문 기자
 
강영임시인
강영임시인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강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 코너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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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시조읽기#강상규시인#불새잎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