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13] 서성윤의 "동네에서 같이 살기"

동네에서 같이 살기
서성윤
카페 출입을 문턱으로 거부당한 화는
덩굴장미가 무성한 야외테라스에서 사그라들었다
의자를 치우자 전동휠체어 넉 대는 자리가 되고
엇박으로 내쉬는 호흡으로 왁자지껄
성윤이를 국립재활원에서 처음 봤을 때
몇 년을 더 살지 동기들은 내기했다는데
이제는 트랜스포머 같은 휠체어 타고
지역에서 자립하고 일까지 한다니
연애만 하면 이번 생은 완벽하다고 웃어댔다
한숨 가득한 서로의 일상을 지지하면서
한바탕 웃다가 침울했다가 다시 웃길 반복
아직 서산이 해를 지우려면 한참이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중을 약속할 시간
서둘러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고
30분 간격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도착한 마을에 하나둘 켜지는 초저녁
귀 뒷머리로 뭔가 오르는가 싶더니
테라스에서 따라온 메뚜긴가?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어 떨어뜨렸다
슬로프를 따라 후진으로 하차하는데
사마귀가 손등으로 성큼성큼
팔 위로 어깨로 머리로
―기사님! 사마귀! 사마귀!
지구가 흔들리도록 쌀래쌀래
왼쪽 어깨에서 주춤대는 녀석을 기사님의 검지킥!
나가떨어진 사마귀를 보고
―이 친구도 같이 내릴게요
잠자리 눈처럼 휘둥그레진 기사님은
―바퀴로 밟아 죽이게요?
―아뇨, 동네에서 같이 살아야죠
<202년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작>

[해설]
더불어 살아가기
이 시를 쓴 서성윤 시인은 20세 때 뺑소니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상태가 되었기에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고 글을 쓴다. 44세로 올해 제35회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자이다. 2006년 사고로 중단한 대학 공부를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에서 마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상작인 이 시는 특이하게도 시적 화자가 관찰의 대상이다. 자신을 객관화하고 희화하고 있지만 실은 처철한 내용이다. “엇박으로 내쉬는 호흡으로 왁자지껄/ 성윤이를 국립재활원에서 처음 봤을 때/ 몇 년을 더 살지 동기들은 내기했다는데”까지는 절망적인 국면이다. 이 국면을 “이제는 트랜스포머 같은 휠체어 타고/ 지역에서 자립하고 일까지 한다니/ 연애만 하면 이번 생은 완벽하다고 웃어댔다”로 전환시킨 것은 본인의 처절한 사투에 가까운 강인한 의지력 덕분이었다.
시의 후반부 일화는 사실일 것이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이었는데 사마귀가 차에 동승했음을 알게 되었다. 화자가 놀라서 기사님! 사마귀! 사마귀! 소리치자 기사가 손가락으로 탁 튕긴다. 사마귀는 잠시 기절했을 텐데 데리고 내리겠다고 하자 기사는 밟아 죽이려고 하느냐 물어본다. 화자는 동네에서 얘랑 같이 살겠다고 말한다. 곤충 한 마리에 대한 화자의 측은지심이 깊은 감동을 준다. 이 시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 대한 꿈이 담겨 있다.
9월 24일 오후에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린 장애인문학 세미나에 발표자로 참석해 서성윤 시인을 처음 만났다. 시인은 토론자였다. 구상솟대문학상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생색내려는 것 같아서 목례만 했다.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드는 것은 사지 멀쩡한 내가 아니라 전신마비의 장애인인 서성윤 시인 같은 분이 아닐까. 그날 발표한 토론문의 일부다.
“장애인문학은 소수자의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관의 시작입니다. 다르게 살아가는 방식들이 서로의 울림을 이어갈 때, 사회는 비로소 더 넓어집니다. 장애는 결핍이 아니라 차이를 통해 드러나는 다양성의 풍경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또 하나의 울림으로 번져 가길 바랍니다. 누군가의 눈 속에서 ‘장애’라는 단어가 다시 써지고, 더 넓은 평등의 문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그 문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이 그 열쇠가 될 것입니다."
[서성윤 시인]
2010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수원새벽빛장애인야간학교 시문학창작반 ‘랑’ 회원.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강사 외. 화성시민신문 시민기자. 2025년 구상솟대문학상,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최우수상 수상 외 다수.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