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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의 세상보기: 시 ] 수직의 삶 / 홍영수

시인 홍영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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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의 삶

홍영수

높이를 알 수 없는 절벽에서

흔들리는 줄 하나에서 중심을 잡으며

이승과 저승의 이음줄에 매달려 줄타기한다.

아슬아슬한 삶이 떨어질 듯 위태롭다.

허공의 몸으로 지상의 양식을 구하고

몸속에 흐르는 삶을 챙겨야 하기에

버팀목인 줄을 자신의 몸에서 꺼내야 한다.

간당간당한 달비계에 앉아 씁쓸한 허공을 마시고

생명 줄의 갈피에 짙은 고독의 삶이 흔들릴 때

마주하는 직벽을 한 계단 한층 내려간다.

층층의 벽과 두터운 세월의 켜를 닦는 것은

생존신고서에 서약하는 것이다.

절벽의 벽을 마주하면 모든 것이 벽이 된다.

생사의 경계에 선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시난고난한 절벽 같은 시간들이 벽에 흐를 때는

흔들리는 긴 줄이 허영 없는 빛으로 번뜩인다.

제 몸에 꼬인 줄을 휘감고

끊어질 듯 한 정신 줄을 간신히 붙잡고서

수직과 수평의 길을 걸어본 사람은

굶주린 영혼의 양식을 구할 수 있다

수직의 삶 _ 홍영수 시인 [이미지: 류우강 기자]

시작 노트 :


도심의 길을 걷다 우연히 높은 빌딩을 청소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간당간당한 줄 하나에 매달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 모습에서 한 가정을 짊어진 흔들거린 어깨의 무게를 보았다. 오직 수직의 벽만 바라보고 줄에 매달려 조금씩 조금씩 안전지대인 지상으로 내려오는 작업 과정, 그토록 가느다란 줄에는 가족의 걱정이 함께 매달려 있다.

 

수평의 길만이 아닌, 수직의 길을 함께 걷는 자만이 진정한 삶의 양식을 구할 수 있다. 우리들의 삶 또한 허공에 홀로 서서 막막한 현실의 벽과 부딪히며 치열한 생존 경쟁 속 줄 하나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정신 줄 하나 놓아버리면 아니되 듯.

시인 홍영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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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의삶#홍영수의세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