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 향기 ] 휴대폰
빠른 속도로 글자를 실어 나른다.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밝은 빛을 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는 잠시 멈춰 따스한 손길을 기다린다. 누가 보냈는지도 친절히 알려준다. 밤새도록 쉬지 않고 수많은 글자와 사진, 새로운 소식들을 받아 '저장'해준다.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안 되는 긴급한 상황을 알리느라 요즘 부쩍 더 바빠졌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한 거다. 반쯤 감은 눈으로 목이 메어지게 쏟아내는 글자들을 바로 읽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루며 '닫기'를 누른다. 잠시 '보기'를 미뤄두면 글자들이 수십수백 개씩 산더미처럼 쌓인다. 그렇다고 내 사정이 바로 '확인'할 수 없고, 그냥 싹 다 '지우기'도 못한다. 그랬다가는 내용도 모르는 숙맥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못 다한 숙제처럼 켜켜이 쌓아 올려 진 글자들을 읽지 못하고 지나치는 날도 허다하다. 며칠 곰삭은 글자들을 꺼내보자니 겁도 난다.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최근 소식부터 '확인'하고 못다 읽은 글자들에 미안함을 보내며 '삭제'를 누른다. 꽉 찬 휴대폰용량 때문에 새로 올라오는 사진과 글자를 담을 수 없어서 그렇게 한 번씩 묵은 글자들을 비워내야 한다. 구식 휴대폰을 연명하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최첨단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신제품을 내놓는다.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 여러 최신기능들을 넣어놓는다. 어느 제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지, 어떤 내용의 스토리를 갖추는가가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생일선물로 딸이 사준 것이어서 바꾸지 않고 계속 사용해왔다. 휴대폰을 볼 때마다 딸이 생각나서다. 그때는 그래도 최신 상품이었지만 신제품이 빠르게 나오는 바람에 금방 구식이 되는 게 현실이다.

일터에 도착한 후에야 알았다. 이곳저곳 찾아봐도 없다. 차 안에서 빠졌나? 차에서 내린 곳까지 구석구석 둘러보았으나 없었다. 앞이 캄캄했다. '가족과 친척, 지인들 전화번호가 모두 들어있고 기념일에 찍은 사진과 자료들이 몽땅 거기에 있는데 어쩌나?' 인터넷으로 회사 전화번호를 찾아서 전화하여 부탁했다. 그는 친절하게 알아보고 연락하겠다고 했다. 일을 하면서도 생각은 온통 잃어버린 휴대폰에만 가있었다. '찾지 못하면 그 많은 정보들을 어떻게 구하나? 생각 만으로도 아찔했다. 다음 날 전화가 왔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다른 사람이 떨어져 있는 휴대폰을 발견하여 보관하고 있으니 내일 전해주겠다."라고 하였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휴~ 다행이다. 찾았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때는 혼이 쏙 빠진 듯했는데, 찾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휴대폰은 나의 분신이며 세상 전부 같다.
이제 아이며 어른들이 하나 씩은 갖고 다니는 휴대폰은 그 주인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잠시도 손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귀중품이 되었다. 순간 순간을 담은 가족사진과 각종 기념사진들, 소중한 이들과 주고받은 많은 사연(문자)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그 당시의 상황을 현실감있게 보여주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동영상'까지 말이다.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제일 가까운 가족들 전화번호도 외우지 않고 '저장'만 해놓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기억해야 할 것을 휴대폰이 대신 기억하게 해서 생기는 일이다. 휴대폰이 있기 전에는 집집마다 전화번호를 웬만큼 외우고 있었고, 많이 외우면 은근히 자부심도 있었는데... 그렇게 저장하고 있는 전화번호 개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름이나 암호만으로 전화번호를 찾아줘서 전화버튼만 누르면 상대방에게 바로 연결되는 편리한 도구이다. 또한 궁금한 것이 있을 때는 인터넷 창에 제목만 치고 '돋보기'모양을 누르면 필요한 각종 정보들을 어디서 찾았는지 재빨리 보여준다. 그가 담을 수 있는 용량은 어마어마하다. 그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를 따라 나의 시선도 다양화, 세계화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나의 어려움을 빠르게 해결해주는 휴대폰은 나의 분신이 된 지 오래됐다. 소지품 중에 크기는 작지만 그 소중함은 단연 으뜸이라 하겠다.
집에서나 외출할 때나 내 곁을 졸졸 따라다닌다. 내가 기분 좋을 때나 슬플 때도 항상 내 곁을 지키며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조잘조잘 전해준다. 가끔 내가 여유 없는 날은 조용히 기다리며 잠만 자기도 한다. 한참을 허둥대던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때서야 잠자고 있는 휴대폰을 급하게 깨운다. 그렇게 부스스 깨어난 그는 그동안 쌓였던 새로운 소식들을 내게 급히 전하느라 한참 동안 발을 동동구른다. 그의 밝은 빛은 꺼질 줄 모르고 나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소상히 알려주어 급한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와 나는 그렇게 대화를 한다. 항상 바쁜 그지만 내가 잠잘 때는 내 머리맡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잠자는 나를 위해 소리 없이(무음).
빛을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이 힘이 약해지면 그 빛도 약해진다. 자신의 힘(배터리 양)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잘 알고 내게 알려준다. 나는 그가 계속 살아있도록 밤사이 '충전'을 해준다. '충전'은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다시 태어난다. 그는 나를 돕고 또 나는 그를 계속 살아있게 해준다. 24시간 내내 숨 가쁘게 쏟아내던 글자들을 비워낸 휴대폰이 다음 소식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이제 그의 밝은 빛은 꺼지고 충전중이다. 그의 곁에서 밝은 내일을 꿈꾸며 나도 충전을 한다.
- 김영희의 '휴대폰' 중에서

[수필 읽기]
휴대폰은 개인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보물 상자이다. 요즘처럼 누가 전화를 들고 다니며 어디에서나 통화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1인 1대는 갖고 다니는 휴대폰은, 이제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물건이 되었다.
휴대폰의 시작은 삐삐였다. 상대방과 직접 통화를 할 수 없으니 무전기처럼 크고 무거운 휴대폰이 나오고, 휴대폰은 점점 얇아지고 가벼워지면서도 많은 기능들을 하나씩 추가하며 오늘날의 휴대폰으로 발전해왔다.
집에 전화를 한대씩 놓아서 전화를 사용하고, 외부에 있으면 사무실 전화나 공중전화로 연락을 하곤 했다. 공중전화 부스가 거리 곳곳에 놓여있었고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동전도 갖고 있어야 했다. 가끔은 공중전화가 잔돈을 꿀꺽 삼켜서 나오지 않는 때도 자주 있었다. 공중전화기에 부착된 요금창이 남은 금액을 알려주어 통화를 더 길게 해야 될 때는, 동전을 더 넣어주어야 하고 동전이 없으면 빨리 대화를 정리하고 끊어야 하는 일도 많았다. 추운 날에는 전화를 하기 위해서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전화를 하기도 했다.
휴대폰은 전화기능에서 점점 더 많은 기능을 내장하게 되었다. 최첨단으로 장착한 휴대폰은 이제 모든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고 그들의 보물상자가 되기에 충분하다.
문자 기능이 생기면서 전화 대신 문자로 간단하게 의사를 전달하기도 한다. 휴대폰의 기능들이 첨단화되면서 사진기와 녹음기, 카세트테이프 및 CD플레이어 등 많은 것들이 필요 없게 되었다. 휴대폰 하나에 사진기와 녹음기 및 음악 듣기 기능들을 다 넣어서 간편해진 것이다. 이제 휴대폰은 대화할 때 서로 얼굴도 볼 수 있는 기능까지 있어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전화하며 얼굴을 볼 수 있는 효자 상품이 되었다.
우리가 기계에 의존하는 삶은 점점 더 가속화 되고 있다. 우리는 기계가 알아서 해주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버튼만 눌러 놓으면 알아서 해주는 자동 밥솥과 자동 세탁기와 자동 건조기며, 자동 청소기는 물걸레질까지 해준다.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서 쓸고 닦으며 청소가 끝나면 다시 제 집(충전기)으로 쏙 들어가기까지 한다. 앞으로는 AI시대이다. AI는 못하는 게 없다. 앞으로의 세상에서 AI가 인간과 얼마만큼 가까워 지느냐만 남은 것 같다. 또 1인 1로봇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오늘 뉴스에서는 자동차 공장에서 모든 일을 로보트가 하는 장면이 나왔다. 인간이 일을 안 해도 되는 세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와서 사람들의 많은 일자리를 로보트가 대신하고 있다. 인간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게 될까.
병원에서도 AI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고 한다. 사람들은 의사보다 AI 의사의 진단과 치료와 관리를 더 믿고 맡기겠다는 의견이 훨씬 많다는 기사까지 나온다. 앞으로는 사람을 사람이 치료하던 시대가 가고, 기계에 내 몸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을 나는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앞으로의 변화되는 세상을 맞을 준비가 나는 되어 있는가. 사람들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을까.
김영희 수필가, 코리아아트뉴스 칼럼니스트, 문학전문 기자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라피 작가,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수상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