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 책다락 62]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

●책소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Идийте, The Idiot)』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간”을 그려 보려 했던 작가의 실험적 작품으로, 주인공 레프 니콜라예비치 므이쉬킨 공작이 ‘백치(바보, 병든 사람)’로 불리며 이야기 전반을 이끌어갑니다.
출판 시기: 1868년경, 도스토예프스키가 스위스 등에서 가난과 질병(간질) 속에서 집필한 장편.
주제: 선(순수·나이브한 선)이 타락한 귀족·시민 사회 속에서 어떻게 배척되고, 결국 파괴되는지를 그린 도덕·철학적 소설.
주인공 “백치” 므이쉬킨 공작
20대 후반 러시아 귀족 공작이지만, 스위스에서 정신적인 문제(간질·백치 증세에 가까운 상태)로 오래 치료받다가 러시아로 돌아온다 .
남에게 쉽게 믿고, 고통을 가진 사람에게 과도할 정도로 연민을 보이며, 사회적 관습·욕망과는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선”의 인물로 묘사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를 예수처럼 완전히 선한 인간의 상징으로 설정했지만, 그 선이 현실 세계를 통과하면서 오히려 주변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결국 파멸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Synobsis
『백치』는 “예수처럼 완전히 선한 사람”이 현실에 존재하면 어떻게 파멸하는지 보여 주는 비극적 실험이며,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자신의 가장 애착 있는 작품이자, 동시에 독자에게 가장 힘들고 오래 기억에 남는 소설로 평가됩니다. 또한 『백치』는 “완전히 선한 사람”이 현실 세계에 들어왔을 때 일어나는 비극과 한계를 다룬 철학적·종교적 서사로,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와 혼란을 동시에 주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주요 등장인물과 관계
나스타샤 필리포브나: 귀족 집안 출신이지만, 한 남자의 정부로 전락한 미녀로, 사랑·욕망·욕설·자기파괴가 뒤섞인 비극적 인물이다. 므이쉬킨이 그녀를 구원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로고진: 나스타샤를 집착적으로 사랑하며 폭력·폭주를 일으키는 인물로, 사회적 망각과 악의 상징으로 읽힌다.
아글라야 에판치나: 장군의 딸이자 상류층의 예쁜 젊은 여성으로, 처음에는 므이쉬킨에게 호의를 보이지만 그의 “이상함” 때문에 결국 멀어진다.
『백치』는 백치처럼 순수한 므이쉬킨 공작이, 욕망·허위·폭력이 뒤섞인 러시아 상류층 사회와 부딪히며 구원을 시도하다가 스스로와 타인을 모두 파멸로 이끄는 비극을 담은 작품입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Фёдор Достое́вский | Fyodor Dostoevsky,1821~1881)
레프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양대문호이자, 세계 문학사에서도 손꼽히는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이다.
본인은 감추었지만 도스토옙스키는 후배 작가 톨스토이에게 강한 열등감이 있었다고 한다. 당대의 비평가 스트라호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트라호프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높게 평가하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는 일화에서 이러한 부분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도 안나 카레니나의 완성도에는 감탄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도스토옙스키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길거리를 뛰어다니며 "톨스토이는 예술의 신이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이러한 열광적인 반응은 작가의 개인 잡지라 할 수 있는 작가의 일기에서도 확인된다. 거기서 이 작품을 '완전무결한 예술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톨스토이에 대한 그의 열등감에는 톨스토이의 경제력도 한몫했다. 자신에 비견되는 천재성을 지닌 후배는 백작 가문 출신이라 느긋하게 퇴고를 하면서 여유로운 창작을 할 수 있었는데, 자신은 속기사까지 불러가며 원고료로 먹고 살아야 했으니.
톨스토이도 도스토옙스키를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막심 고리키가 쓴 톨스토이 회상록에서 톨스토이는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자신이 병들어 있기에 모든 사람들이 병들어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톨스토이가 그나마 가장 높게 평가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죽음의 집의 기록인데,[9] 시베리아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담은 내용으로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들처럼 등장 인물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등장 인물이 처한 험악한 환경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에 보통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으로는 간주되지 않는 작품이다.
다만 톨스토이가 죽기 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었던 것은 맞다. 임종 몇 주 전, 그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기 시작했고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문체에 불평을 했지만 꾸준히 읽으려고 했고, 그가 죽던 해 10월 28일 딸에게 보낸 편지에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비롯한 책 2권을 보내달라고 했다고 한다.
서로의 작품에서 각자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톨스토이의 후반부 대작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와 카츄샤가 젊은 시절 즐겨읽었던 작품의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이며[10],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후반부 대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주인공 이반 표도로비치가 악마와 대화를 하는데, 이때 악마가 이반 표도로비치를 자극하며 '인간의 예술적 섬세함은 그 대단한 레프 톨스토이도 따라가지 못한다' 라고 말한다.
참고로 두 사람은 생전에 한 번도 서로 만나본 적이 없었다. 만날 기회가 있긴 했는데 1878년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의 철학 강의가 열린 솔랴노이 고로독이 그 장소였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는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톨스토이의 동행이었던 니콜라이 스트라호프는 자신을 아무에게도 소개시키지 말라는 톨스토이의 부탁 때문에 그를 자신의 친구인 도스토옙스키에게도 소개시키지 않았고 도스토옙스키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매우 안타까워 했으며 스트라호프를 원망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 사후에 도스토옙스키의 아내 안나로부터 이 일화를 전해 들은 톨스토이 역시 그 강의에 도스토옙스키가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고 그를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톨스토이는 안나에게 도스토옙스키는 톨스토이 자신에게 귀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한 답을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당대의 또 다른 대문호 투르게네프와의 관계도 굉장히 나빴다. 하긴 서민 출신에 러시아빠인 도스토옙스키 눈에 좋은 집안 출신의 유럽빠(특히 프랑스빠) 투르게네프가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그래서 <악령>,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등에서 유럽에 갔다와서 '프랑스 혁명을 직접 목격했다.'면서 거들먹거리는 겉멋만 든 인물을 계속 등장시키며 줄기차게 깠다. 악령에는 소설가 카르마지노프라는 등장인물이 있는데, 대놓고 디스하며 이는 명백한 투르게네프의 패러디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생활난에 시달리던 그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투르게네프에게 와서 돈 좀 빌려달라고 징징거리며 애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투르게네프는 그리도 자신을 욕하던 주제에 굶어죽을 것처럼 비굴하게 100루블을 빌려달라고 온 도스토옙스키에게 별다른 말 없이 50루블를 빌려줬다. 물론 도스토옙스키는 그 돈의 상당수를 도박으로 아낌없이 날렸다.
보다못한 투르게네프의 지인들이 "쓰레기같은 놈에게 왜 돈을 빌려주냐?"며 분노 어린 반응을 보이자 투르게네프는 "막상 내 욕 해놓고 돈 급하면 또 나에게 와서 오만상으로 빌어대잖아? 난 그거 보는 재미로 빌려주는 거지. 그리고 저 작자는 그 굴욕감을 글로 나를 욕하면서 씻으니 뭐 서로가 각자 피해보는 게 없잖아."라고 대꾸했다.
사실 젊은 시절의 도스토옙스키는 투르게네프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그가 처음 문단에 들어섰을 때, 투르게네프를 보고 "투르게네프는 러시아의 문인들 중 한순간에 친해지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투르게네프를 좋아했다고 한다. 1845년 11월 16일에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형에게 쓴 편지에는 투르게네프에 대한 그의 애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래도 도스토옙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 알렉산드르 푸시킨에 대한 연설회장에서 투르게네프와 극적으로 화해하며 서로간에 나쁜 감정을 깨끗이 정리했고 도스토옙스키 장례식에 투르게네프가 참가해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2년 뒤, 그가 사망하자 도스토옙스키 유족들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