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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31] 석지원의 "상자의 일상"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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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의 일상

 

석지원(계성초 5학년)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침입자같이

상자가 들어온다

안을 알 수 없는 상자

정체 모를 범죄자 같다

상자도 사정이 있는 걸까?

시간이 갈수록 내용이 궁금해지는

설레게 하는 상자 속 비밀

어제 주문한 샴푸일까?

엊그제 주문한 겨울일까?

상자는 버려지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의 꿈으로 재활용되겠지?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처럼

다시 돌아오겠지?

상자의 목숨은 몇 개나 될까?

 

―마중물 동시집 제1권 『딱- 기다려, 우리가 간다!(도담소리, 2022) 

상자의 일상 _ 석지원 학생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상자의 일상 _ 석지원 학생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언제부터인가 재래시장이나 슈퍼마켓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스마트폰을 눌러 물건을 주문하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부쩍 늘었다. 지금은 택배 차량이 동네에 하루에 몇 대가 들어오는지 셀 수도 없다. 대문 앞에 택배 박스를 두고 가는 경우도 있고 딩동! 배달부가 초인종을 눌러서 전해주고 가는 경우도 있다. 등기로 온 것은 수취인에게 직접 전달해야 한다.

 

  2022년 당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쓴 이 동시를 읽고 깜짝 놀란 이유는 비유법의 사용에 있다. 상자가 집에 침입자같이 들어온다고 하고, 안의 내용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정체 모를 범죄자 같다고 한다.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처럼같은 직유법 사용도 놀라웠지만 엊그제 주문한 겨울일까?”는 충격적인 시행이었다. 이 동시만 봤다면 어른이 도와주었겠지 생각하면서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앞의 「삶은 계란」과 바로 뒤의 「거꾸로 똑바로」를 보고 이 아이는 상상력이 뛰어나고 문학적 재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디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시를 계속 쓰기 바란다.

 

  이 동시의 마지막 5행도 기가 막히다. 종이 박스는 비닐이나 플라스틱 제품처럼 영구히 쓰레기로 남지 않고 다시금 박스로 재활용됨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누군가의 꿈으로 재활용되겠지?”라고 생각해본다. 또한 다른 상자로 부활하기에 상자의 목숨은 몇 개나 될까?”라고 상상해본다. 석지원 학생의 엉뚱한 생각이나 신선한 꿈을 수학 공식이나 화학 방정식이 짓누르지 않기를 바란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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