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향기] 등 위의 졸업식 - 김보미
등 위의 졸업식
김보미
'털썩'
아침마다 내가 마당에 내려앉는 소리다.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뒤틀려 있었던 터라 자라면서 점점 사지가 굳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이 걷고 뛸 때 나는 엉덩이를 바닥에 끌며 기어 다녔다. 일하려 간 다른 가족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마당으로 털썩 굴러 강아지와 놀기도 하고, 텃밭에 꽃구경을 하기도 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엄마의 등에 업혀 마을 어귀까지 가보는 것이 내 유일한 외출이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 줄 알았는데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가 나를 학교에 보내겠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작은 어촌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형편에 보행조차 불가능한 장애인을 학교에 보내겠다는 엄마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방해만 하지 말라고 서슬 퍼런 고함을 치셨다. 혹시나 나 때문에 엄마가 곤란해질까 봐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어린 마음속에 폭죽이 울려 퍼졌다. 대문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학교를 다니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입학식 날, 엄마는 늘 그랬듯 내게 등을 내미셨다. 책가방에 긴 끈을 달아 목에 맨 채로 마당에 쪼그려 앉은 엄마의 등을 그때는 유심히 살피지 못했다. 그저 밖에 나간다는 사실에 들떠 마냥 좋기만 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오는 버스를 기다려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엄마는 수십 번 나를 고쳐 업으셨다. 그렇게 도착한 학교는 크고 눈부셨다. 거의 만나보지 못한 내 또래들이 가득했고, 새로운 냄새와 볼거리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만난 별천지가 지옥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엉덩이를 질질 끌며 화장실로 가는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네 괴물, 바퀴벌레 같은 별명이 붙었다. 내 등을 때리고 내가 돌아보기 전에 도망가는 놀이가 유행했고, 음식물 찌꺼기나 쓰레기가 책상에 쌓였다.
체육복이나 운동화는 수도 없이 사라졌고, 책가방도 늘 쓰레기통에 뒹굴었다. 아무리 새롭고 신기한 세상에 대한 동경도 그 지독한 괴롭힘을 견디게 해줄 수 없었다. 매일 밤 울면서 잠들던 나는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픈 신체적인 증상이 반복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책가방을 목에 걸고 내게 등을 내미셨다. 한사코 거부하는 나를 억지로 업으시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잘못한 사람은 엄마가 아닌데 내게 사과하시면서도 학교는 가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 괴롭고 힘들어도 끝까지 학교를 졸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셨다.
엄마의 작은 등을 보며 더는 버티지 못하고 등교를 했다. 나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마을의 모든 허드렛일을 도맡아하시는 엄마에게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던 어느날, 유독 나를 심하게 괴롭히던 애들 몇 명이 짜고 내 등 뒤로 몰래 다가와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잘라버렸다. 하굣길에 나를 데리러 오신 엄마는 까슬까슬해진 내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쓸어보시더니 자리에 주저앉아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으셨다.
그날 밤, 엄마는 또 한 번 아버지와 큰 소리를 내며 싸우셨다. 나를 학교에 보내겠다고 하셨던 날과 같았다. 아버지의 역정어린 목소리에도 엄마는 물러서지 않으셨다. 비명을 내지르다시피 악다구니를 쓰는 엄마에게 결국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다.
다음날이 돼서야 엄마가 내 수술비를 가지고 아버지와 전쟁을 벌이셨다는 걸 알았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 돈을 빌려 뒤틀린 사지를 수술하기로 한 것이다. 엄마는 수술을 받으면 적어도 혼자 걸을 수는 있을 거라고, 그래야 학교도 다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내 수술을 위해 식구들이 사는 집을 저당 잡히고, 고등학생이던 오빠는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했다.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처럼 내게 등을 내미셨다. 육지로 나가는 배를 타기 위해 먼 길을 가는 동안 또 수십 번 나를 고쳐 매셨다.
7번이나 큰 수술을 받고도 몇 년이나 길고 잔혹한 재활 기간을 보내야 했다. 조금씩 길어지고 곧게 펴진 사지를 움직이는 건 수술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온몸이 땀으로 젖고, 입에서는 쉴 새 없이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래도 이를 악물었다. 나를 업고 다니느라 항상 엄지발가락에 쥐가 나는 엄마를 위해 포기할 수 없었다. 마침내 내 힘으로 첫 걸음마를 내딛던 날, 비록 몸이 흔들거려 꼭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는 모양새였지만 나는 혼자 걸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 발로 병원 복도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다 커서야 발바닥이 땅에 닫는 느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엄마의 등 위에서가 아니라 내 두 발로 서서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눈높이만큼이나 경이롭게 다가왔다. 그 아름다운 세상의 중심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의 등이 아니라 엄마의 얼굴이 있었다. 업힐 때는 몰랐던 작고 여윈 모습이 급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보행의 자유를 쟁취한 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차례로 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의 대학으로 유학까지 갔다. 여전히 팔을 허우적거리고 비틀대는 걸음이었지만 내 힘으로 걸어 다녔다.
병원에서 만난 엄마의 몸은 참혹했다. 허리디스크도 터지고, 무릎도 수술 없이는 안 되고, 발목도 심하게 손상되어 정상적으로 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나 때문이었다. 나를 업고 세파를 건너는 동안 엄마의 몸은 난파된 배처럼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지만 울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일을 해야 하니 내가 엄마를 돌봐드려야 했다. 정신을 다잡았다. 엄마가 내게 그랬듯이 나도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허리와 무릎, 발목까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엄마를 위해 나는 오빠와 밤마다 휠체어를 미는 연습을 했다. 위험하지 않게 엄마를 태워드릴 수 있을 만큼 능숙하게 다루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을 때쯤, 엄마 앞에 휠체어를 내밀었다.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거부하셨다. 내가 미는 휠체어에 어떻게 앉느냐고 하셨다. 나는 뒤를 돌아 엉거주춤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이렇게 등을 내밀고 엄마를 업어주고 싶었는데, 평생 나를 업어준 엄마를 나도 업어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고, 그래서 밤마다 휠체어 미는 연습을 했으니 내 등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휠체어에 앉으시라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등 뒤에서 엄마가 훌쩍이시며 휠체어에 앉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얼른 눈물을 훔치고 씩씩하게 휠체어를 밀었다. 내가 힘들어하면 다시는 앉지 않으실까봐 팔에 힘을 단단히 주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렇게 엄마를 태운 휠체어를 끌며 검사실로, 수술실로, 회복실로, 치료실로 종횡무진 병원을 누볐다. 여전히 나는 엄마를 업어드리지 못하고 엄마의 등을 바라보는 처지이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간절하게 감사한 적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몸이 회복되신 엄마는 다행히 큰 후유증 없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셨다. 나도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식 날, 온 가족이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도시로 왔다.
나는 엄마의 머리 위에 학사모를 씌워드리고 내 등을 내밀었다. 미리 내 부탁을 받은 아버지와 오빠가 거의 들다시피 엄마를 내 등 위에 올려놓았다. 엄마는 큰일 난다고 빨리 내려놓으라고 소리를 지르셨지만 우리는 똘똘 뭉쳐 엄마를 업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만 엄마 등에서 졸업한 게 아니라 엄마도 내 등 위에서 나를 업고 건너온 긴 세월을 졸업하신 것이니 꼭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엄마 덕분에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내가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아직도 그 사진을 보면 그때의 흥분과 감격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아버지와 오빠가 몸무게를 받치고 나는 업는 시늉만 했지만 그래도 내 등 위에서 학사모를 쓰신 엄마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서로의 등 위에서 각자의 고된 시절을 졸업한 우리 모녀는 이제 나란히 서서 손을 마주 잡고 걸어보려 한다. 앞으로도 견딜 수 없는 세월이 우리를 찾아오겠지만 따뜻했던 등 위의 졸업식을 기억하며 이겨나갈 것이다.

[심향 단상]
이 글을 읽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대신 어머니를 보냈다'등등 어머니에 대한 말은 끝이 없습니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말처럼 화자의 가족은 똘똘 뭉쳐서 큰 어려움을 슬기롭게 잘 이겨내며 살아온 결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가족의 힘은 참 대단하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 앞에 어떤 시련이 닥쳐도 도망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며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선의 생을 이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화자의 어머님은 자신이 낳은 아기를 보는 순간 직감하고 결심하셨을 겁니다. 앞으로의 삶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하여 나는 내 아기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을 힘을 다해 나는 아기를 책임지고 잘 키우겠다는 선언을 자신에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에 보내 제대로 가르쳐서 제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 시키겠다고 다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이 잘못을 했을 때 '내가 잘못 가르쳤다' '나에게 책임이 있다' 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부모와 자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자식은 곧 나다'는 생각입니다.
화자의 어머니도 화자도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에 순응하며 운명이라 생각하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든 뚫고 나가리라 결심합니다. 딸은 그것을 어머니로부터 배웠습니다. 자신을 위해 당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적으로 키우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신이 그 어머니의 뜻을 저버릴 수 없고,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살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도 원하는 것이었습니다.집에서만 뒹굴다가 학교에 가면서 희망이 자랐고 또 그 희망을 반 친구들이 짓밟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 것이냐의 질문에 우리가 어떤 대답을 내놓느냐에 따라서 길이 열리고 기적 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식의 삶을 최대한 돕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서 수술시키겠다는 어머니! 그 끈질긴 모성을 무엇이 바꿀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때때로, 자주 누군가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주체가 되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 뭔가 나아 보이면 질투심에, 또는 나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행동들은 정당한가.
살다 보면 서로를 다 이해하기 어렵고, 상대방을 잘 알기 어려워서 무조건 믿기도 어렵습니다.
몇 명이 모이면 편이 갈라지고, 힘이 센 아이가 주동이 되어 그의 생각에 맞춰 따라가는 무리(패거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면서 나이가 더 들어 또 그런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간관계가 참 어려운 것이 하루 이틀에 쌓아진 것이 아니고, 많은 시간이 축적되어 행동으로 굳어졌을 터,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른 사회, 함께 사는 사회가 아름다우려면,
첫째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말과 행동을 삼가해야 한다. 무심코든 의도적으로든 다른 사람을 해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둘째 옳지 않은 일은 하지 말자. 옳음(진실)을 지키는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고 타인도 지키는 것이 됩니다.
'나 하나 꽃 피워 뭐가 달라질까'가 아니라 '나도 꽃 피우고 너도 꽃 피우면 우리의 꽃밭을 만들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좋은 생각과 행동으로 주변이 물들고 지역을 물들이고 나라를 물들이면 분명 살기 좋은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 본받고 싶은 국민성이 탄탄하게 다져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정직하고 공정하며, 타인을 배려하며 산다면 희망이 많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김영희 수필가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래피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 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당선 - 공저 < 내 인생의 어부바>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 공저 <불의 시詩 님의 침묵>
한국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수상 - 공저 <김동리 각문刻文>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작가회의회원
코리안드림문학 편집위원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