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27】 저승발 특별담화문
저승발 특별담화문
김선호
추석 앞둔 공동묘지 조상님들 담화니라
명절이라 모여들어 사내들은 술만 푸고 이지가지 차례 음식 태산 같은 뒷설거지 녹초 된 며느리들이 입이 댓 발 나왔니라 누가 왔네 또 안 왔네 동기간에 쑤군대고 결혼해라 애 낳거라 취직해라 볶아대니 큰소리 웃음을 거둬 담장 밖을 넘느니라 잔꾀 부린 아무개는 명절 차례 건너뛰고 부모 중에 한 날 골라 사대봉사 통합하고 아예 다 파장한 집도 들불처럼 번지니라 세월 따라 풍속도 변하는 게 지당한 법 하나같이 맞벌인데 남녀 구별 있겠느냐 서로가 나눠서 해도 빠듯한 살림 아니더냐 족보 항렬 이런 말도 머잖아 사라지니라 호주제 폐지되고 엄마 성도 따는 판에 그 무슨 홍동백서고 좌포우혜 따지느냐 가족 화목 다지면서 웃는 날이 명절인데 불편한 자리 만들어 굳이 왜 부르느냐 우리는 굶어도 사니 그런 걱정 접어두거라
귀신이 곡할 일들만 안 만들면 족하니라

명절 증후군, 귀성 전쟁과 함께 명절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명절을 보내며 쌓인 심신의 피로와 스트레스 따위를 일컫는다. 과도한 집안일과 가족 간의 갈등에서 비롯되며 주로 주부들이 겪는 이상 현상이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의욕이 떨어지고, 괜히 우울해지기도 한다.
어릴 적, 명절이면 집집마다 손님들이 많이 들었다. 집안은 물론이고 세배꾼이며 이웃 친지들이 서로 오가며 음식을 나눴다. 그때마다 어머니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음식상을 차려야 했다.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명절은 주부들의 전장이다. 물가를 따져가며 시장을 봐야 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치러야 한다. 술상에서 흘러나오는 사내들의 웃음소리가 그리 반갑지만은 아닐 테다.
핵가족화에서 비롯된 명절 간소화 문화는 양성평등 개념이 확립되며 기름을 부었다. 차례나 제사에 대한 인식이 가파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고조까지 봉행하던 사대봉사는 천연기념물 수준이 됐고, 부모 제사도 한 번에 몰아 지낸다. 그마저 아예 없앤 집도 있으니 그 또한 어쩌랴.
저승을 안 가봤으니 모르지만, 차린 음식을 조상이 드시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날을 만들고 그때라도 모여 서로 덕담하고 우애를 다지라고 생긴 풍습이리라. 음식 준비하고 절차를 이행하는 의례보다 구성원 간의 만남과 화목이 더 소중한 요즘이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