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따라가다 마주한 또 다른 나, 이종희의 ‘그림자 너머’
어떤 그림은 대상을 보여주기보다 마음의 상태를 먼저 건드린다. 이종희 작가의 작업이 그렇다. 화면 속 형상은 분명 풍경이지만, 그 풍경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무와 길, 물빛과 붉은 숲,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 인물의 흔적은 결국 한 사람의 내면으로 수렴한다. 그 중심에 놓인 화두는 ‘그림자’다.

작가노트에서 이종희는 그림자를 “언제나 곁에 있으면서도 손에 닿지 않는 존재”라고 말한다. 빛이 있기에 존재하지만 빛을 향할수록 멀어지고, 때로는 앞길을 이끌고 때로는 뒤에서 조용히 위로하는 존재. 사라진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는 그 그림자는 결국 멀리 떼어낼 수 없는 또 다른 자아이자, 끝내 내 안에 머무는 존재에 가깝다. 이번 작업은 바로 그 질문,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에서 출발한다.

이종희의 회화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색과 질감, 번짐과 겹침을 통해 서서히 감각을 불러낸다. 푸른 계열의 화면에서는 차가운 공기와 고요한 사유가 감돌고, 회백색의 두터운 마티에르에서는 침묵과 기억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또 붉은빛이 짙게 깔린 화면에서는 시간의 농도와 삶의 흔적, 그리고 지나간 감정의 온도가 묵직하게 배어 나온다. 이처럼 작가의 풍경은 눈앞의 자연이라기보다 내면이 외부 풍경의 형식을 빌려 나타난 심리적 공간에 가깝다.

사이즈: 116.8 × 91.0
재료: oil on canvas
2025
특히 이번에 소개된 ‘그림자 너머’ 연작은 존재와 자아에 대한 사유를 더욱 응축해 보여준다. 「그림자 너머 1」(116.8 × 91.0cm, oil on canvas, 2025), 「그림자 너머 2」(90.9 × 72.7cm, oil on canvas, 2025), 「그림자 너머 3」(90.9 × 72.7cm, oil on canvas, 2025)는 각각 다른 화면 구성과 정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내가 바라보는 그림자는 과연 나의 바깥에 있는가, 아니면 가장 깊은 내면에서 되비추는 자아의 또 다른 얼굴인가.

사이즈: 90.9 × 72.7
재료: oil on canvas
2025
작품 속 길은 어디론가 이어지지만 쉽게 목적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숲은 울창하지만 닫혀 있지 않고, 물은 고요하지만 완전히 멈춰 있지 않다. 그 모호한 경계 속에서 관람자는 화면을 보는 동시에 자기 안의 감정을 비춰보게 된다. 이종희의 작업이 인상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작가는 풍경을 그리지만, 결국 우리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불안, 위로, 상처, 희망의 결을 불러낸다.

사이즈: 90.9× 72.7
재료: oil on canvas
2025
이종희의 그림 앞에서 ‘그림자’는 더 이상 어둠의 은유만이 아니다. 그것은 빛 때문에 생겨난 존재이며, 빛을 통해서만 다시 읽힐 수 있는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어둡기보다 오히려 조용한 희망을 품는다. 그림자를 응시한다는 것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빛의 방향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외 전시를 통해 꾸준히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다져온 이종희 작가는 화려한 수사보다 깊은 정서와 사유로 말을 건네는 작가다. 그의 화면은 크게 소리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그리고 관람자는 그 잔잔한 여운 속에서 문득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이종희가 묻는 “그림자 너머”란, 결국 삶의 어둠을 지나서도 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내면의 빛에 관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이종희 작가는 개인전 및 초대개인전 6회, 부스전 1회를 비롯해 국내외 단체전 30여 회에 참여하며 꾸준히 작업세계를 확장해온 작가다. 2026년 Art heal 전, 2025년 밀라노 현대여성 미술협회 초대전, 한국회화의위상전, 일원회 정기전, 현대여성 미술협회 정기전 등에 이름을 올렸고, 2024년에는 IAA 선정작가 37회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교육원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자과정 동문전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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