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48】 국기문란
국기문란
김선호
불콰한 노인 둘이서 언성 점점 높이는 주막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가당키나 하냐 말이다 사뿐사뿐 걷는데도 용케 듣고 파르르 와서 아래층 젊은 새댁이 면박하지 않드나 무식도 유분수레이 그러니까 시인 기라 저 꼭대기 펄럭이제? 저걸 보고 그리 쓴 기라 이상향 뭐 그런 세상이 그리워서 썼다드만 그나저나 저걸 보니 옛날 생각 문득 난데이 여섯 시에 방송 틀면 가던 길도 멈춰서서 일제히 경례 붙이며 강하식을 안 했드나 어딘지도 모르면서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오른손 들어 올려 왼 가슴에 대고 보면 창공을 나는 새들도 구경하러 내렸데이 서슬 퍼런 왜정 때는 더 우러른 태극기라 손에 들고 독립 외치며 거리마다 넘쳤데이 광복이 거저 왔겠나 밑거름이 실한 기라 그런 국긴데 요즘 들어 대접이 말이 아니라 국경일에 아파트 보면 겨우 몇 집 펄럭이고 그나마 거꾸로 단 집도 심심찮게 눈에 띈데이
국기가 문란하다고 국기를 그럼 쓰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고, 유치환의 명시 「깃발」은 시작한다. 이상향을 동경하지만, 근원적 한계 때문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뇌와 운명을 깃발에 비유했다고 배웠다. 바람 타고 펄럭이며 하늘로 훨훨 날고 싶거늘, 깃대에 묶였으니 오죽 답답하랴. 그 모습을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읽어낸 시인의 혜안에 감탄한다.
기(旗)는 종이나 헝겊 따위에 글자나 그림, 색깔 등을 넣어 특정 단체를 나타낼 때 쓴다. 학교의 교기, 군대의 부대기, 조의를 표시하는 조기, 황금사자기 등 스포츠 권위를 나타내는 각종 기를 비롯하여 오륜기,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 등 많고도 많다. 적지를 점령하고 제일 먼저 아군의 깃발을 꽂는 걸로 보더라도 기는 그야말로 그 단체의 존엄한 상징이다.
추억으로 남았지만, 7·80년대는 국기강하식이 있었다. 행정기관, 학교, 군대 등 공공기관은 오후 여섯 시면(동절기 17:30) 일제히 강하식 방송을 내보냈고, 지나가던 사람은 물론 자동차까지 멈춰서서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경례했다. 국기에 대한 예의를 갖춤으로써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군사정부의 의도였다.
국기게양 통계자료는 미미하다. 겨우 눈에 띄는 춘천시의 경우 25년 광복절이 29.14%, 24년 삼일절이 12.5%이고, 수도권의 24년 광복절은 7%에 머문다. 국기게양이 권장 수준이라 그런지, 국가 차원의 통계도 찾아보기 힘들다. 곧 삼일절인데, 국기문란 형량을 놓고 여전히 시끄럽다. 기미년의 함성처럼은 아니더라도 정성껏 국기를 달면서 나라를 먼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