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규 칼럼] 2026년, 우리는 부동산의 덫을 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왜 '부동산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땅이 지배하는 경제, 그리고 2026년의 선택, 우리는 흔히 현대 자본주의를 '금융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알고리즘 거래가 밀리초 단위로 세계 시장을 움직이고, 암호화폐와 파생상품이라는 무형의 숫자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부를 창출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냉철한 데이터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줍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가계 자산의 약 60%가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이 비율은 더욱 높아져, OECD 국가 평균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5%를 넘어섭니다. 한국은 이보다 더 극단적입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가계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75%를 상회하며, 이는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문제는 이 권력이 생산적이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부동산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않습니다. 공장이 제품을 만들고,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연구소가 혁신을 이끄는 것과 달리, 부동산은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의 핵심 자원인 자본과 노동력이 이 정적인 자산을 향해 끊임없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동산의 덫'입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부동산 위기의 반복 패턴
부동산이 경제 위기의 진원지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역사는 놀랍도록 유사한 패턴을 반복해왔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서브프라임의 본질
2008년 금융위기는 흔히 복잡한 금융 공학의 실패로 설명됩니다. CDO, CDS 같은 난해한 약어들이 등장하며, 마치 월스트리트의 천재들이 만든 괴물이 세계를 파괴한 것처럼 묘사됩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훨씬 단순합니다. '부동산 가격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맹신이 불러온 참사였습니다.
미국의 주택 가격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연평균 10% 이상 상승했습니다. 이 상승세를 믿은 금융기관들은 소득 증빙도 제대로 받지 않고 대출을 남발했습니다. 집값이 계속 오르면 담보 가치가 상승해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06년 하반기부터 주택 가격이 정체되자 연쇄 부도가 시작됐고,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순식간에 마비됐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부동산 버블의 교과서
더 극적인 사례는 일본입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전설적입니다. 도쿄 황궁 부지의 이론적 가격이 캘리포니아 주 전체 땅값과 맞먹는다는 농담이 현실이 될 정도였습니다. 1990년 버블이 터지자 일본 경제는 30년 이상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핵심은 자본의 오배분입니다. 일본 기업들은 본업인 제조업 혁신 대신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습니다. 은행들은 부동산 담보 대출에만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생산성 향상은 정체됐고, 버블 붕괴 후 은행의 부실채권은 GDP의 20%에 달했습니다. 부동산에 몰린 자본이 얼마나 거대한 기회비용을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90년대 스칸디나비아 금융위기
덜 알려져 있지만 중요한 사례가 북유럽입니다. 1980년대 후반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금융 자유화와 함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1990년대 초 버블이 붕괴하면서 스웨덴의 경우 GDP가 5% 이상 감소했고, 실업률이 10%를 넘어섰습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조차 부동산 거품의 폭발을 막지 못했습니다.
2020년대 중국 헝다 사태: 현재진행형 위기
가장 최근이자 가장 위협적인 사례는 중국입니다. 중국 헝다그룹의 파산은 단순한 기업 부도가 아닙니다. 중국 GDP의 약 30%가 부동산 관련 산업입니다. 가계 자산의 7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습니다. 헝다 사태 이후 중국 부동산 시장은 급속히 냉각됐고, 이는 중국 경제 전반의 성장 둔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은 하나입니다. 자본이 생산적인 기업 투자나 기술 혁신으로 흐르지 않고 부동산이라는 고정 자산에만 집중될 때, 경제의 활력은 사라지고 거품이 터지는 순간 국가 전체가 마비되는 '랜드 트랩(Land Trap)'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동산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역사적 사례들이 '무엇'이 일어났는지 보여준다면, 이제 우리는 '왜' 일어났는지 구조적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합니다.
금융의 부동산화: 은행이 혁신을 외면하는 이유
현대 금융 시스템은 본래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시스템입니다. 기업의 성장 가능성, 기술의 혁신성을 평가해 자본을 배분하는 것이 은행의 역할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은행들은 점점 더 부동산 담보 대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제학자 오스카 요르다 연구팀이 17개 선진국의 140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970년대 이후 은행 대출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했습니다. 1970년 약 30%였던 비중이 2010년에는 60%를 넘어섰습니다. 한국의 경우 이 비율은 더욱 높습니다. 2025년 기준 국내 은행 가계 대출의 약 75%가 주택담보대출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요? 답은 리스크 회피에 있습니다. 기업에 대한 대출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합니다. 스타트업이 성공할지, 신제품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습니다. 반면 부동산 담보 대출은 명확합니다. 땅과 건물이라는 '실물'이 있고, 최악의 경우 이를 처분해 원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자원 배분의 심각한 왜곡을 초래한다는 점입니다. 혁신적인 중소기업은 자금을 구하지 못하고,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자금을 조달합니다.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은 둔화됩니다.
지대 추구의 승리: 노동보다 소유가 유리한 사회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주목받은 이유는 명확한 데이터로 r > g를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다는 이 공식은 부동산 시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서울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약 2배 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서울 직장인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연평균 3% 수준에 그쳤습니다. 즉, 6년간 월급으로 모을 수 있는 돈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얻은 자산 증가액이 압도적으로 컸습니다.
이것은 노동을 통한 소득보다 자산 보유를 통한 지대(Rent)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는 구조입니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200년 전에 경고했던 '지주 사회'로의 회귀입니다. 리카도는 지대가 경제의 주요 수입원이 되면 사회의 역동성이 사라진다고 경고했습니다. 2026년 오늘날 우리는 그 경고가 현실이 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적 덫: 정부는 왜 부동산 거품을 터뜨리지 못하는가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는 정치적 차원에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안정화는 모든 정부의 공약이지만, 실제로 이를 실행하는 정부는 드뭅니다. 왜일까요?
첫째, 단기적 경기 침체 우려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건설업, 인테리어, 가전제품 등 연관 산업 전체가 타격을 받습니다. 가계의 자산 가치 하락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집니다. 이른바 '역자산 효과'입니다. 정부는 이 충격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유권자 구조에 대한 오해입니다. 정치권은 "집값을 떨어뜨리면 유주택자들이 반발해 표를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서 제시된 통계를 다시 보겠습니다. 서울 가구의 51.9%가 무주택자입니다. 전국적으로는 이 비율이 더 높습니다. 즉, 표심의 다수는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원하는 쪽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주저하는 이유는 유주택자들의 조직화된 반발과 언론의 프레임 때문입니다. 부동산 하락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무주택자의 고통은 통계 속에 묻힙니다.
셋째, 금융 시스템 리스크입니다. 한국의 경우 가계부채가 GDP 대비 100%를 넘어섰습니다. 이 부채의 대부분이 부동산 담보입니다. 만약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담보 가치 하락으로 대출 부실화가 우려됩니다. 정부는 금융 시스템 위기를 피하기 위해 부동산 시장을 떠받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치적 덫입니다. 부동산 거품을 알면서도 터뜨리지 못하고, 결국 더 큰 거품이 될 때까지 유지하는 악순환입니다.
2026년의 갈림길,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026년 현재, 우리는 여전히 부동산 중심 경제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소득 대비 20배를 넘어섰고, 청년 세대는 '영끌'과 '빚투'라는 극단적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미국은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주택 가격이 재상승하고 있으며, 중국은 부동산 버블 붕괴의 여파로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있습니다.
이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첫째, 세대 간 불평등의 고착화입니다. 부동산을 보유한 기성세대와 그렇지 못한 청년 세대 간 격차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입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완전히 걷어차이고, 한국 사회의 역동성은 소멸할 것입니다.
둘째, 경제 생산성의 장기 정체입니다. 자본이 혁신이 아닌 부동산으로만 흐르는 한, 일본식 장기 침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겹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셋째, 사회적 불안과 정치적 혼란입니다. 주거 불안은 출산율 하락, 결혼 기피로 이어지고, 이는 국가의 미래 자체를 위협합니다. 절망한 세대는 극단적 정치 선택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요?
해법은 개인의 욕망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재의 경제·금융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보유세 정상화를 통한 투기 억제입니다. 부동산이 '보유하면 이익'인 구조에서 '보유하면 비용'인 구조로 전환해야 합니다. OECD 평균 수준의 재산세 실효세율을 적용하고, 다주택자에 대한 누진 강화가 필요합니다.
둘째, 금융 자원의 재배분입니다. 은행 대출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추고, 기술 혁신과 중소기업 육성에 자본이 흐르도록 정책적 인센티브를 설계해야 합니다.
셋째, 공공주택 대규모 공급입니다. 시장 기능만으로는 주거 안정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싱가포르, 오스트리아 빈 등의 사례처럼, 정부가 직접 양질의 공공주택을 공급해 시장의 가격 앵커 역할을 해야 합니다.
넷째, 조세 정의의 실현입니다. 부동산 거래 차익과 임대 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 불로소득이 근로소득보다 유리한 구조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2026년은 선택의 해입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덫을 방치해 다음 세대에게 더 깊은 절망을 물려줄 것인가, 아니면 용기 있는 구조 개혁으로 '땅이 지배하는 경제'에서 '생산과 혁신이 중심인 경제'로 전환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역사는 명확한 교훈을 줍니다. 부동산 거품은 반드시 터집니다. 문제는 그것이 통제된 형태로 연착륙할 것인가, 아니면 파국적 붕괴로 이어질 것인가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적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선택하는 정치적 용기와 사회적 합의입니다.
'돈이 깔린 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다시금 생산과 혁신에 자본이 흐르는 시대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거대한 부동산의 덫을 깨고 나갈 유일한 길입니다.
조선규 | 칼럼니스트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