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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75] 정지민의 "못다 한 숙제" 외 2편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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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숙제 2

 

정지민

 

부엌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께서 내주신 숙제 때문이다

내일은 어버이날이니 부모님께

꼭 노래를 불러 드리고 오렴

 

병반* 간 아버지는 아직 안 오셨고

눈곱도 떼지 못하고, 잠꼬대 같은 목소리로

연탄불 따뜻한 부뚜막에 앉아 노래를 했다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니 뭐 하냐 퍼득 안 씻고

학교 갈 준비 안 하나!”

 

엄마가 소리치셨다

엄마 땜에 숙제를 못 했다

 *병반(丙班) : 밤 11시 출근해 아침에 퇴근하는 작업반.

 

서울 아이

 

60명이나 되는 콩나물시루 교실

콩나물 대가리가 하나 더 늘었다

하굣길 아이들이 호위 무사처럼

전학생(轉學生)을 따랐다

 

여기는 돼지를 많이 키우니?

저 산비탈에 돼지우리가 엄청 많네

여기도 케이블카가 다니네

근데 사람이 안 타고 저 시커먼 건 뭐니?

 

꾀죄죄한 어린 무사들이 끝말을 따라 했다

너 집 어디나니?

너 숙제 했나니?

모두가 서울 아이가 되고 싶어 했다

 

판자촌도, 삭도 바구니도 모르는 공주

하얀 타이즈 신은 구두

새끼 돼지 같은 아이들

씩씩거리며 씩씩하게

산비탈 집으로 올라갔다

 

다이너마이트를 든 소녀

 

폐석산 중턱 오두막으로 이사 왔다

석공 사택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

 

첫날 잠을 자려 누웠지만

잠은 안 오고

방바닥 아래에선 쾅쾅 소리가 들렸다

 

무서워 이불을 똘똘 말다 깬 아침

갱도에서 다이너마이트 터트리는 소리라 했다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아버지가 굴착기 들고

검은 석탄을 깨는 소리였다

더는 그 소리가 두렵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어른이 되면

세상 어둠 깨는

다이너마이트 하나 들겠다

다짐했다

 

—『다이너마이트를 든 소녀』(쉬는시간, 2025) 
 

서울 아이 _ 정지민 시인 [ 그림: 류우강 기자]

  [해설]

 

   탄광촌에서 자란 아이의 눈으로

 

  쉬는시간 출판사의 청소년 시집 시리즈 제8권째로 나온 이 시집은 머리말이 하늘에서 탄이 쏟아지는 마을 도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시커먼 흥전항 굴속으로 출근하시고 엄마는 마교리와 흥전리 철로를 따라 낙탄을 주워 이고 오셨습니다.”란 말로 시작된다. 모든 시가 자신의 성장기 때의 경험담이다. 한 권의 시집에 수작이 서너 편만 되어도 좋은 시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성장시집(성장소설을 독일어로 bildungsroman라고 한다)에서 수작이 아닌 시는 1편도 없다. 부모님은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정성껏 돌보았고, 자식(어린 날의 정지민 시인)은 부모님을 존경심을 갖고 연민의 정으로 바라본다.

 

  첫 번째 시는 선생님이 어버이날 전날 내주신 숙제 생각이 나서 노래를 부른 어린 날의 일화를 소개한 것이다. 집에는 엄마밖에 없는데 엄마 앞에서 정색하고 노래 부르기는 부끄럽고, 혼자서 노래 부르다 게으름을 피운다고 꾸중을 듣는다. 지민이의 갸륵한 마음을 엄마가 알았더라면 달려가 꼭 껴안았을 것이다.

 

  탄광촌의 아이들은 진한 강원도 사투리를 썼을 터, 서울에서 전학 온 소녀의 나긋나긋한 말투가 얼마나 신기했을까. 따라다니면서 서울말 흉내를 내는 장면이 우습다. 게다가 그 소녀는 하얀 타이즈 양말을 신었고 반짝이는 구두가 까맣다. 사내녀석들이 벨도 없나, 호위 무사처럼 졸졸 따라가고. 지민이에게는 눈꼴신 광경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내아이들에게 그 소녀는 선녀요 천사였을 것이다.

 

  마을에서 살다가 어찌하여 폐석산 중턱 오두막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까. 괭이나 굴착기로 광석을 깨는 소리와 다이너마이트 터뜨리는 소리를 상시 듣게 되었다. 그건 아버지가 광산 현장에서 일하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나도 어른이 되면 세상 어둠 깨는 다이너마이트를 하나 들겠다고 다짐했고, 그것이 시가 되었다. 이 시집의 시가 되었다. 1903년부터 시작된 한국 석탄산업의 역사가 1990년대 석탄산업합리화로 급격하게 쇠퇴, 지금은 대부분이 폐광되었다. 90년 석탄산업의 역사를 증언하는 시집이 도계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 때까지 산 정지민 시인에 의해 처음으로 나왔다. 눈물겨운 시집이다. 아이를 화자로 했지만 이 땅 산업화의 불을 밝힌 모든 광부들에게 바치는 거룩한 찬가이다.

 

  [정지민 시인]

 

  1971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서 광부의 딸로 태어나 탄광촌에서 성장했다. 2024년 계간 《문학나무》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이름을 알렸으며, 첫 시집 『석탄』을 출간했다. 현재 춘천시에서 특수교육 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탄광촌에서의 경험을 담은 시들이 주를 이룬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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