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97] 최성아의 "현수막이 바람 타는"
현수막이 바람 타는
최성아
구독을 강요하는 지면이 펄럭인다
말이 아닌 글자가 오히려 독인 것을
좋아요 끌어들이는
저들 내막 가린 채
출근길 찌푸리는 팽팽한 편 가르기
진짜라 꾸며대며 미끼 마구 흔든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민의 없는 구호들
―『휴머니스트』(책만드는집, 2025)

[해설]
현수막은 사전 선거운동
운전을 못 배워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니 서울 시내 곳곳에서 현수막을 어떤 날은 하루에 10개 이상을 본다. 바뀌는 날짜를 셈해보지는 않았지만 1주일에 한 번 혹은 열흘에 한 번 바뀌는 것 같다. 얼굴 사진을 크게 넣어 국회의원 개인의 이름으로 내거는 경우가 있고, 당의 이름으로 내거는 경우도 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자신의 치적을 선전하거나 맞서고 있는 당이나 정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용하는 언어가 대단히 상스러워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자리에 위아래로, 또는 옆으로 여러 개 걸려 있어 공해라는 느낌도 든다. 재활용이 불가능해 태워야 할 텐데 페인트를 흠뻑 머금고 있어 유독가스가 나오지 않을까?
최성아 시조시인도 현수막을 보고 화가 난 경우가 있었던가 보다. 그것들은 시민들에게 읽기를 강요하고 있다. 억지로 읽으라고 명령하고 있다고 보아 “구독을 강요하는”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글자들은 대체로 사람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여러 사람의 치적을 혼자의 공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다수의 국회의원이 발의하여 통과시킨 것도 혼자만의 공인 양 자화자찬한다. 과정이나 내막은 숨긴 채 침소봉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출근길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팽팽한 편 가르기를 주민들은 매일 보아야 한다.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때는 가짜를 진짜라 꾸며대며 미끼를 마구 흔든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민의 없는 구호들”은 다음번 선거를 위한 사전 선거운동이 아닌가. 국회의원 낙선자는 올리기 어려운 자리지만 현역 국회의원은 아무 거리낌 없이 사흘 도리로 올리니까 차별이요 불균형이란 느낌도 든다.
알고 싶다. 현수막이 전국 주요 도시에 하루에 몇 백 장이 매달릴까? 그것을 묶는 비닐 끈의 양은? 현수막은 태우는가 땅에 묻는가. 다 공해의 원인이 될 것이다.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무리 현수막을 내건 사람이 선량(選良)이라도 아침 출근길에 그의 욕을 들으면 기분을 영 잡치고 만다.
‘저는 다 아는 겁니다. 왜 자기 자랑을 그렇게 열심히 합니까?’ ‘상대방 당과 의견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상스럽게 욕하면 제 얼굴에 침 뱉기 아닙니까?’ 이런 말을 안 해도 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최성아 시조시인]
마산여고를 거쳐 부산교육대학 졸업. 2004년 《시조월드》 신인상으로 등단(본명: 최필남). 시조집 『부침개 한판 뒤집듯』『달콤한 역설』『내 안에 오리 있다』『아리랑 DNA』, 시선집 『옆자리 보고서』, 동시조집 『학교에 온 강낭콩』『창마다 반짝반짝』『가위바위보』. 부산시조 작품상, 한국꽃문학상, 한국동시조문학상, 제39회 성파시조문학상, 《문학도시》 작품상 수상, 현재 《시조정신》 편집장, 부산시조시인협회장.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