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행사 리뷰 ] "제26회 전국가사문학학술대회" 및 "오늘의시조시인회의" 가을 세미나 성료
[담양=코리아아트뉴스 김강호 기자] 가을빛이 깊어진 11월 중순, 전남 담양은 시와 학문이 어우러진 특별한 시간 속으로 들어섰다. 15일부터 16일까지 이틀간, 한국가사문학관에서는 제26회 전국가사문학학술대회와 오늘의시조시인회의 가을 세미나가 열려, 시조와 가사문학을 사랑하는 200여 명의 시인과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K-시가의 미학과 문화콘텐츠화’. 전통 시가문학의 정체성을 되짚고, 현대적 계승과 콘텐츠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담양의 누정과 산천이 품은 정서 속에서, 시가문학은 단순한 텍스트를 넘어 삶의 미학으로 되살아났다.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오종문 의장은 개회사에서 “시조와 가사는 자연과 인간, 언어와 정신의 심층을 가장 오래된 형식 속에 담아온 한국문학의 근원적 장르”라며, “이번 세미나가 시가문학이 시대와 함께 나아갈 길을 그리는 실제적 논의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학술대회는 광주여대 홍성희 교수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최한선 한국가사문학학술진흥회장이 ‘K 시가를 말하다 – 가사 창작을 말하다’를 주제로 기조발표를 맡았다. 그는 한국 시가문학의 현대적 변용과 세계화 가능성을 탐구하며, 전통이 어떻게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이어진 주제발표에서는 이지엽 교수(경기대)의 「시조의 미학과 미래 발전 방향」, 박영주 교수(강릉원주대)의 「가사의 미학과 연구사적 전망」, 강경호 교수(경상국립대)의 「K-시가의 문화콘텐츠화 전략」 등이 발표되어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종합토론에서는 이상원 교수(조선대)가 좌장을 맡아 이송희·김형태·윤병용 시인과 함께 시조 및 가사문학의 융복합, 대중화, 디지털 플랫폼 확장 가능성에 대해 심층적인 논의를 이어갔다. 특히 현대인의 정서 속에서 시조가 어떤 형태로 재생산될 수 있는지, 교육·문화 콘텐츠로서의 확장 전략이 활발히 제기되었다.
2025 한국가사문학대상, 임주동 시인 수상

2025년 한국가사문학 대상은 임주동 시인의 「익어가는 시간」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발효와 숙성의 시간을 인간의 삶과 어머니·며느리 세대의 인내와 사랑으로 확장한 시가로, 전통 장맛의 은유를 통해 삶의 깊은 결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상금은 1천만 원이다
담양, ‘가사의 고향’이 품은 문학적 장소성
담양은 단순한 학술대회 개최지가 아니다. 조선 전기 정철이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한국 가사문학의 정점을 이룬 작품들을 창작한 곳으로, ‘가사의 고향’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정철이 담양의 누정과 강, 산수를 걸으며 길어 올린 정한과 흥취는 이후 수백 년간 이어진 가사 전통의 기틀이 되었다.
소쇄원은 ‘자연 속에서의 사유와 창작’이라는 가사문학의 이상을 구현한 대표 공간이며, 식영정은 학문과 시문이 교차하는 조선 지성의 상징으로 전해진다. 환벽당 또한 시문·서화·풍류가 어우러진 조선 예술정신의 현장으로서, 가사·시조가 일상 속에서 실천되던 공간적 원형을 보여준다.
참가자들은 “가사의 진정한 생명력은 텍스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담양의 산천과 누정, 바람의 결까지 스며 있는 미학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현장에서 느낀 감흥을 전했다.
문학답사, 시가의 숨결을 걷다
행사 중간에 진행된 문학답사에서는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을 비롯해 관방제림, 메타세콰이어 길 등 담양의 풍경을 직접 체험하며, 전통 시가문학의 배경이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한 참석 시인은 “소쇄원의 정자에 앉아 바람결과 나뭇잎의 숨을 들으며 시조의 선율이 몸에 새겨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시가문학, K-콘텐츠로의 확장 가능성
이번 학술대회는 전통 시가문학의 문학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이를 현대 문화콘텐츠로 재창조할 가능성을 탐색하는 자리로 평가된다. 학계 관계자는 “이번 세미나는 발표를 넘어, 한국 시가문학의 미래적 가치와 서사를 담양이라는 역사적 장소성과 결합해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총평했다.
[2025년 한국가사문학대상 작품]
익어가는 시간
임주동
앳된 딸 시집보낸 친정 엄마 애간장
어설픈 새아기에 시큰둥한 시어머니
그 모습 지켜보던 메줏덩이 하는 말
짓이겨진 내 얼굴 못생겼다 놀려도
참는 법을 알기에 대꾸조차 안 하면서
묵은 된장 되려고 밑자리 깔고 앉아
입 다물고 살면서 그날을 기다리다
웬만치 익은 뒤에 뚜껑을 열고 나와
마침내 밥상에서 구수한 내 풍기며
입이 무건 뚝배기 모락모락 묻는다
이보게! 장 맛 어뗘?
그라제 이 맛이랑께~
밥사발 게 눈 감춘 도둑놈, 밥 도둑놈!
가만히 듣고 있던 간장독이 뭐라 한다
종갓집 할머니와 함께 늙은 씨간장이
숨 쉬는 종균으로 생명줄 길게 이어
나이 어린 햇간장을 어르고 다독이며
항아리에 금줄치고 묵언 수행하면서
싱거운 사람에게 짭짤하고 뼈있는 말
맛 자랑 솜씨 자랑 수라상의 밑간은
조선간장 저 라고 은근히 뽐내는데
때깔 좋은 고추장이 매콤하게 한마디
짠맛을 낼 적에는 그런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단맛 쓴맛 매운맛도 있는 법
볶음탕과 매운탕 노란 양푼 비빔밥
얼큰한 맛을 낼 때 나 없이는 택도없어
이 몸이 귀한 줄을
온 세상이 다 안다
한쪽 구석 청국장도 쉰내 묻은 목소리로
거북한 그 인상에 찡그리는 우리에게
한 세월 숨죽이고 진득하게 띄워낸
살아있는 유산균을 아직도 모르냐며
철부지들 보란 듯 묵직하게 나무란다
서로 다른 맛을 내는 장醬씨 집안 형제들이
조곤조곤 하는 말 귀담아서 들어 보면
몸뚱이를 통째로
푹 삭혀서 감칠맛
소리 없이 해를 넘겨 묵혀내어 익은 맛
시간을 품어 안고
우려낸 깊은 맛
그렇듯 발효되어 스스로 숙성되고
묵묵히 참아오며 대를 이은 며느리는
머리가 허옇도록 자신을 삭이면서
어머니의 손끝에 고여있는 마음인 듯
인생도 장맛처럼 묵어야 제맛이라며
장독이
내게 하는 말
너도, 지금 익고 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