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34】 표문순의 "단 소금"

단 소금
표문순
펑퍼짐한 소금 주머니
사발 위에 괴어놓고
동여맨 나일론 끈 풀어볼 생각도 말고
잊은 듯
몇 해 놔두면
단맛이 들 거란다
든다는 건 기다리는 것
오래도록 덜어내는 것
짠 것과 쓴 것들 일테면 눈물 같은
애간장
다 내리고 나면
혀끝에서 만나는
『저음의 슬픈 연대 』 (2025. 현대시학)
소금은 본래 짜다.
태생적 속성이며 변하지 않는 진리다.
펑퍼짐한 소금 주머니를 사발 위에 얹어놓는다. 몇 해 동안 풀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기다림의 시간을 거치면, 짠맛 다 빠진 단맛만 남는 소금을 만나게 된다.
삶 또한 그러하다. 누구의 인생이든 처음부터 달콤할 수는 없다. 눈물로 씻기고 살아내는 동안 매운맛 쓴맛이 켜켜이 얹힌다. 그것들이 조금씩 덜어지고 흘려보낼 때 남은 것은 단맛이다. 그 단맛은 격렬한 맛이 아니라 견뎌낸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감로수 같은 것이다.
기다리는 것은 곧 덜어내는 일이다. 애써 움켜쥔 것을 내려놓고, 애간장을 태우던 집착과 눈물을 흘려보낼 때 인생은 마침내 단맛으로 전향한다. 한 겹 또 한 겹 벗겨낸 것은 획득하는 단맛이 아니라 비워서 남는 맛이다.
어쩌면 행복도 그와 같을 것이다. 더 가지려 할 때는 짠맛이 우리 곁을 지키지만, 덜어내고 흘려보낼 때 비로소 달콤함이 깃든다. 그러니 삶의 진미(珍味)는 성취가 아니라 숙성에 있다. 시간이, 기다림이, 덜어냄이 만들어낸 의외의 선물이 행복일 것이다.
「단 소금」은 역설과 기다림의 미학이다. 짠맛의 상징인 소금이 시간이 흐른 뒤 단맛을 품는다는 설정은 불가능 속에서 가능성을 길어 올린 역설이다. 또한 그 변화는 채움이 아닌 비움과 덜어냄을 통해 이루어진다. 눈물 같은 짠맛과 쓴맛이 다 빠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혀끝에서 단맛을 만날 수 있다는 시인의 통찰은, 일상의 소재를 통해 삶의 깊은 진리를 드러낸다. 「단 소금」은 역설, 비움, 숙성의 미학이 서정으로 어떻게 승화되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는 단맛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조금씩 내려놓는다. 짠 기억, 쓴 상처, 소금기 어린 고통 그러다 문득 알게 된다. 혀끝에 맴도는 단맛은 짠맛과 쓴맛을 지나야 단맛이 열린다는 사실을.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수상.
2025년 제1회 소해시조창작지원금 수상.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