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이승하의 "실크로드에서"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편 20]
실크로드에서
ㅡ2000년 8월 15일을 기다리며, 외할아버지에게
외할아버지, 지금 이곳은 투루판 분지입니다
잠든 대지를 흔들어 깨우고 싶은지 열차는
10분마다 한 번씩 불빛 없는 들판에 기적 울리지만
불편한 침대차 속으로 달려드는 대륙의 더운 바람
잠을 재웠다 깨웠다, 깨웠다 재웠다 합니다
남로 북로 어느 길로 가도 교역할 수 있었던
실크로드ㅡ중국과 서역이 만날 수 있었던 길
캄캄했던 50년 동안 제 등 뒤로 버티고 서 있던
산맥의 이름을 아십니까 알타이와 톈산
그보다 더 멀리 떨어져 계셨지요 외할아버지
몽매했던 50년 동안 지평선 너머로 펼쳐져 있던
사막의 이름을 아십니까 타클라마칸과 고비
그보다 더 목말라 하셨지요 외할아버지
아버지의 생사를 모른 채 산 당신 딸의 50년
인간의 사막에 이제 눈물비가 내리려 합니다
소리 죽여 울면서 불러보던 이름 이번 광복절 되면
목놓아 외치며 불러볼 어르신네도 있을 텐데
아내와 7남매 두고 철삿줄에 묶여 가신 외할아버지
지금껏 살아 계십니까 오래전에 별이 되셨습니까
창가로 하나둘씩 다가오는 인가의 불빛
덜커덩 기차 멈춘 이곳은 하미역哈密驛
둔황역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더 가야 한답니다
그 시간을 참고 기다려야 하겠지요 지금 이곳은
투루판 분지의 끝 하미역 플랫폼입니다
2000년 7월 22일
외손자 승하 올림
ㅡ『뼈아픈 별을 찾아서』(달아실, 2020)

[해설]
길은 사람이 가야지 길이다
연재를 시작한 이래 자작시 해설을 쓰는 것은 처음이다. 어제 오세영 시인의 시 「사랑하는 동생 종주야」에 대한 해설을 쓰면서 돌아가신 내 외할아버지 얘기를 좀 했었다. 2000년 7월에 중국 둔황 일대 여행을 하면서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1950년 7월 초에 북으로 강제납북이 되어 끌려간 외할아버지의 생사 여부를 그때는 알 수 없었는데, 딱 50년이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하미역 플랫폼에서 수첩을 꺼내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외할아버지께 올리는 편지 형식으로 술술 풀려나왔다.
납북자 가족은 죄를 진 적도 없건만 죄인 취급을 당했다. 연좌제 때문이었다. 북한이 다수의 국회의원이 공화국에 귀순해 왔다고 주장했으니 가족은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1909년 4월 15일생인 외할아버지는 초대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나이가 고작 30대 말이었다. 하지만 근소한 표차로 떨어졌다. 대한잠사회 중앙위원과 대한농민회 중앙위원을 하면서 신망을 얻어 1950년의 5ㆍ30선거 때는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서울 용문동의 처제 집에서 거처하면서 매일 국회에 등원하던 중이었다. 한 달이 채 못 된 6월 25일에 전쟁이 일어났고 사흘 만에 한강다리가 죄다 끊겼는데 폭파를 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명을 받는 한국 공군이었다.
붉은 완장을 찬 3명의 사내에게 끌려간 외할아버지의 생사 여부를 가족은 알 길이 없었다. 가요 <단장의 미아리고개>가 증언하는 내용 그대로, 외할아버지는 죄인 취급을 받으며 북으로 끌려가셨다. 납북자 가족은 협의회를 만들어 우리 정부가 북한에 연락해서 생사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대중 정부 때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였다. 남측 기자단이 평양에 가서 납북자의 생존 여부를 묻자 뜻밖에도 가르쳐주었다. 박성우 의원이 1954년 2월 4일에 작고했다고 알려주었고 평양 용성구 용궁동에 재북 인사 62기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고도 알려주었다. 작고한 일자까지 적혀 있는 비석 사진을 기자한테 받고 외갓집의 모든 가족은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전쟁 중에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북한에서는 납치한 국회의원들을 끌고 다녔을 테니 제대로 먹였을 리도 없었다. 그래서 40대 중반에 돌아가셨을 것이다.
6ㆍ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위원회 위원장인 당시의 황교안 국무총리에 의해 외할아버지는 월북자의 누명을 벗고 납북자로 바뀌게 되었는데 그때가 2017년 4월 27일이었다. 내 어머니, 큰외삼촌, 중간외삼촌, 막내이모는 이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이미 다른 세상으로 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이 시를 쓴 2000년 7월 22일만 하더라도 외할아버지의 생존 여부도 알 수 없었기에 중국 땅에서 외할아버지께 편지를 쓰는 식으로 시를 써보았다. 실크로드, 즉 비단길은 중국의 비단과 옥을 서양으로 수출하고 서양의 보석세공품과 모피가 중국으로 오는 동서의 교역로였다. 길은 사람이 가라고 만들어져 있는데 이 땅의 길은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다. 반야월이 작사한 가요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가사가 이렇다.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삿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