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전시/이벤트
전시

서용선의 생생한 생각, ‘단종 드로잉’으로 되살아난 역사와 인간의 비극

임만택 전문 기자
입력
수정

갤러리JJ가 한국 현대미술의 중견 작가 서용선의 개인전《서용선의 생생한 생각: 단종 드로잉》을 오는 4월 23일부터 6월 6일까지 개최한다. 

서용선 개인전 포스터

이번 전시는 갤러리JJ에서 열리는 서용선의 여섯 번째 전시로, 작가가 1986년부터 지금까지 40여 년간 천착해온 ‘단종’ 연작 가운데 드로잉 작업을 집중 조명하는 자리다. 전시는 오프닝 리셉션(4월 23일 오후 5~7시)과 작가와의 대화(5월 16일 오후 2~4시)도 함께 마련한다. 

서용선 Suh Yongsun, 계유년 Year of the Fowl, 2006, Acrylic on paper, 50 × 66cm (Framed)

이번 전시는 서울의 네 개 갤러리와 영월의 전시관이 동시 진행하는 연합전시 《서용선의 단종 그림》 프로젝트의 한 축이다. 특히 단종을 주제로 한 드로잉 380여 점 가운데 약 4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이며, 평면 드로잉뿐 아니라 콜라주, 노트, 스케치북, 관련 자료들까지 함께 공개해 작가의 사유와 작업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초기 습작에서부터 2006년작 〈계유년〉, 〈모의〉, 〈소년왕〉, 그리고 최근작 〈오세암〉(2025), 〈청룡포〉(2026)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단종 연작의 변화를 조망할 수 있다. 

서용선 Suh Yongsun, 상황 The State of Affairs, 2006, Pencil, Acrylic on paper, 50 × 66cm (Framed)

서용선의 단종 연작은 단순한 역사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비운의 왕 단종을 둘러싼 사건과 인물, 장소를 통해 역사 속 권력의 구조와 인간의 욕망, 그리고 배제된 존재들의 흔적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낸다. 

서용선 Suh Yongsun, 모의, Acrylic on paper, 64.5 × 49cm (Framed)

갤러리JJ는 이번 전시에 대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강렬한 색채의 회화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작가의 생각이 가장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나는 장이라고 설명한다. 드로잉은 회화보다 더 날것의 상태로 작가의 신체적 움직임과 사고의 흐름을 담아내며, 완결된 해석보다는 열려 있는 상상과 질문의 공간을 제공한다. 

서용선 Suh Yongsun, 단종부부, 1999, Charcoal water-tinned glue on paper, 24 × 33cm

실제로 이번 전시에 포함된 작품들은 선을 중심으로 한 서용선 특유의 조형 언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힘 있는 획과 단호한 구성, 인물과 사건이 한 화면 안에서 교차하는 독특한 장면들은 단종의 비극을 단지 과거의 서사로 고정하지 않고 현재적 문제의식으로 확장시킨다. 궁궐 지붕 너머의 사건, 얽힌 인물들의 시선, 역사적 긴장이 응축된 장면은 마치 작가의 머릿속에서 막 떠오른 생각이 그대로 종이 위에 옮겨진 듯한 생동감을 준다. 이는 드로잉이 단순한 밑그림이 아니라, 기억과 해석, 감각과 사유가 동시에 발생하는 독립적 예술 형식임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서용선 Suh Yongsun, 소년왕, 2006, Acrylic on paper, 64.5 × 49cm (Framed)

서용선은 오랜 시간 서울, 뉴욕, 베를린 등 도시 공간은 물론 철암, 독도, 양평, 암태도, 영월 청령포와 같은 역사·사회적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인간 삶의 조건을 탐구해왔다. 그의 곁에는 늘 스케치북이 있었고, 순간의 인상과 생각, 현장의 분위기를 빠르게 포착하는 드로잉은 그의 예술세계 전반을 떠받치는 근간이 되어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단종’이라는 오래된 역사적 주제를 통해 서용선 예술의 중심부, 곧 인간과 역사, 기억과 기록에 대한 작가의 근원적 질문을 마주하는 의미 있는 기회라 할 수 있다.

서용선 Suh Yongsun, 음모 Plot, 2006, Acrylic on paper, 50 × 66cm (Framed)

또한 이번 전시는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둘러싼 비극을 넘어, 역사에서 밀려나거나 이름 없이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드러낸다. 노산군, 엄흥도, 송씨부인, 안평대군 등 제도적 역사 바깥에 머문 인물들이 화면 안에서 다시 호출되며, 이는 단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오늘의 삶과 사회를 성찰하게 하는 동시대적 물음으로 이어진다. 서용선의 그림은 결국 과거를 그리면서 현재를 묻고, 역사적 비극을 통해 인간 존재의 조건을 탐색하는 작업인 셈이다.

서용선 Suh Yongsun, 청령포, 2026, Oilpastel, graphite on tracing paper, 17.8 x 27cm (1)

갤러리JJ는 이번 전시에 대해 “드로잉이라는 근원적 방식으로 서용선 예술 세계의 핵심을 만날 수 있는 뜻깊은 기회”라고 밝혔다. 단종의 역사, 인간의 욕망, 권력의 비극, 그리고 기억과 기록의 문제를 하나의 선과 형상으로 끌어내는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역사화가 지닌 가능성과 깊이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자리로 주목된다. 

 

블로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kanlimmtaik/224231339867

임만택 전문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