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16】 남의 밥에 든 콩이 굵어 보인다
남의 밥에 든 콩이 굵어 보인다
김선호
칠월 하순 들어서면 가슴이 콩닥콩닥한데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얼떨결에 당했니라 빼꼼히 열린 틈으로 슬금슬금 엿보더니만 물밀듯 쳐들어와선 주인 행세를 하는 기라 남의 밥 콩이 굵어 보이니 우찌 탐이 안 났겠노 앞뒤도 재지 않고 눈이 홱 뒤집힌 기라 신삥이 꼬릴 치는디 안 넘어갈 장사 있드나 옷도 집도 먹거리도 시도 노래도 춤까지도 콩밭에서 두부 찾듯 그리 급히 갈아탄 기라 잠깐이 오천을 내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데이
가뭄에 콩 나듯이 정신 든 디도 있다드만 ‘국산품 애용’은 귓속에서 벌써 화석 됐는디도 속 상표 뒤집어 꺼내 오이엠인지 살핀다데 목숨이 중해 그런지 먹는 기는 더하데이 유기농이니 신토불이니 호들갑을 떨어대믄서 국산 콩 토종 밀 찾아 가게를 뒤진다드만 콩 심은 디 콩 나고 팥 심은 디 팥 난다는디 우리 시 우리 가락을 우리가 가꿔야 하는디 아직도 꼬부랑글씨를 신주처럼 받드니 원
그런 꼴 마주칠 때는 날콩 씹은 얼굴인 기라

일반적으로 근대화는, 봉건사회로부터 자본주의사회로 가는 역사적 과정이다. 우리나라 근대화 기점은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영·정조부터 시작하여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경장까지 무려 100여 년의 차이가 존재한다. 기점 논란을 차치하고 근대화는 전통문화를 잠식했다. 상투를 잘랐고 의복, 주택뿐만 아니라 정신문화도 흔들었다.
문학에도 서구화 봇물이 터졌다. 김억의 「봄은 간다」, 주요한의 「불놀이」를 시작으로 한용운, 이상화, 홍사용, 김소월, 김동환, 오상순, 황석우, 남궁벽 등 걸출한 시인이 등장했다. 오늘날 시의 대종을 이루는 자유시는 이런 과정을 거쳐 고착됐다.
고려말설이 지배적이긴 하지만, 향가나 고려가요까지 맥락을 잇는 시조도 이 무렵 위기의식을 감지했다. 음풍농월을 벗으려는 현대화의 몸부림은 대구여사의 「혈죽가」에서 비롯된다. 1906년 7월 21일 대한매일신보는 민영환의 충절을 노래한 여사의 작품을 실었다. 시상과 형식은 고투지만, 시국에 반응하는 모습을 높이 샀다. 「혈죽가」100년을 맞은 문단은 7월 21일을 <시조의날>로 제정하고 선포했다.
<시조의날>을 제정하고 스무 해를 맞지만, 아직도 우리는 시조가 낯설다. 시조 하면, ‘태산이 높다 하되’를 연상하고 심지어는 한시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옹졸한 국수주의자가 되자는 건 아니다. 우리 얼을 이어 온 시조에도 조금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내로라하는 유명시인이 미국에서 자유시를 강의할 때, ‘한국에는 시가 없느냐?’는 질문에 얼굴이 화끈거렸고, 돌아와서는 시조를 익혀 시조집까지 낸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의 밥에 든 콩이 더 굵은 게 아니라 그리 보일 뿐이다. 어느 그릇에 담긴 콩이든 크기는 같다.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등 네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