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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옥지구의 "핸드 로션"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옥지구의 "핸드 로션"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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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140]

 

핸드 로션

 

옥지구

 

저기요, 다시 자기 소개를 하겠습니다

잠시 당신의 시간을 대출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기억해주세요입니다

나이는 계절 인연과 친구입니다

취미는 30초 숨 참기입니다

직업은 천연 화장품 발명가입니다

 

단거리를 좋아해서 싫어하고 싶고

장거리를 싫어해서 좋아하고 싶어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먹어 치웠습니다

 

? 설득이 부족하다고요?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아요

자주 나를 짜내서 발라보면

금세 좋아하게 될 거예요

 

제조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에

매일 사과 껍질을 받아야 했습니다

 

상품명은 당신이 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분을 읽어보시오

 

[핸드 로션 성분]

 

재회 120,000ppm

추억 1,000ppm

흔적 1,000ppm

 

그래서 당신, 제가 제조한 핸드 로션을 구매할 의향이 있습니까?

 

―『어느 누구에게도 다정함을 은폐하기로』(출판사 핌, 2024)

 

핸드 로션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시인은 개구쟁이
 

  20대인 옥지구 씨, 아직 등단은 하지 않았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단체의 예비예술인 최초발표지원프로그램 덕분에 시집을 냈다. 그 나이답게 생각하는 것이 재기발랄하고 구사하는 언어가 통통 튄다. 시는 핸드 로션을 만든 이가 스스로를 천연 화장품 발명가라고 하는데,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광고하는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다.

 

  요즈음 창업하는 젊은이들이 제법 된다. 아이디어 싸움이라고 할까, 기술력보다는 상상력이 뛰어나야 한다. 티브이 드라마 중 <스타트업><이태원 클라쓰>를 재미있게 봤는데 이 시를 읽으니 두 드라마가 생각난다. 젊음을 무기로 당당하게, 과감하게, 때로는 무모하게!

 

  “자주 나를 짜내서 발라보면/ 금세 좋아하게 될 거예요는 진지한 제품 선전 같지만 제조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기에/ 매일 사과 껍질을 받아야 했습니다에 이르니 어렸을 때 시장통에서 봤던 약장수 같다. 자자, 일단 한번 써보시라니깐. 효과가 금방 나타날 거여. 애들은 저리 가라.

 

  핸드 로션 상품명을 독자에게 정해달라고 한다. 재회와 추억과 흔적을 배합한 것이라니 상품명을 달콤향이라고 할까? ‘설렘 로션이라고 할까? 물론 구매할 의향이 있다. 젊은이가 저렇게 팔려고 애쓰고 있는데 도와주는 셈 치고 사서 발라봐야지.

 

  [옥지구 시인]

 

  199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을 잃었다. 지금은 인공와우를 착용한 구어와 수어의 이중언어 사용자. 슬픔을 억누르기 위해 유치한 장난을 연구하는 내향인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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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지구시인#이승하시인#시해설#핸드로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