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22】 지희선의 "얼음 조각품"

얼음 조각품
지희선
서릿발 냉기 다스려
혼의 열기로 빚은 명품
잔인한 시간의 질투
형체 없이 허물었네
사랑도
이와 같아라
한순간에 녹고 마는
Ice Sculpture
Oh masterpiece made with spirit
by controlling the frosty air.
But alas, it’s melted down.
A cruel time is so jealous.
Even love
seems to be like that,
as it melts down in one moment.
『L.A. 팜트리』 (2025. 동경)
누구나 안다.
얼음조각의 아름다움은 사라질 운명과 한 몸이란 걸. 영원하지 않기에 더 귀하고, 붙잡을 수 없기에 더 애틋하다.
지희선 시인의 「얼음 조각품」은 사랑의 유한성을 노래한다. 사랑을 중의적으로 확장하면 사람들과의 관계, 인연으로도 잘 읽힌다.
얼음조각품은 유동적, 유형적이며 시간과 온도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자연의 예술이다. 사랑도 이와 같다. 시간이 흐르면 같은 모습으로 남을 수 없다. 얼음을 조각하듯 마음을 다해 관계를 쌓아올려도,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면, 이별의 시간이 찾아온다.
어떤 관계는 뜨거운 햇살 아래 빠르게 녹고, 어떤 관계는 그늘에서 오래 견디다 제자리로 스며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결국 머물렀던 흔적으로 남는다. 함께 걸었던 길, 얼굴 쳐다보면서 웃었던 일, 눈빛에 깃든 진심, 그것들이 녹아 우리 안에 조용히 젖어든다. 사랑이 떠났다고 의미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부재의 여백 속에 더 많은 것을 생각하며 깊어진다.
누구는 사랑을 오래 남는 것이라 믿고, 또 누군가는 순간의 불꽃이라 말한다. 사랑과 얼음 조각품은 단단한 외형으로 시작된다. 얼음 블록을 다양한 형태로 자르고 다듬는 것처럼, 마음으로 가까워지다 체온으로 엮여 하나의 형상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알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녹아내림의 시간을 함께 담아야 한다. 얼음 조각은 언젠가 흘러내리고 그 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스며들 뿐이다. 한때 빛나던 얼음 조각품이 녹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도 언젠가 가슴속에서 나직이 불러보는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 뉴스 전문 기자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