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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이 가장 현대적일 수 있다는 믿음...신단후 초대전 《검이불루 화이불치》, 한국 미의 본질을 묻다

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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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무엇을 그려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왔다.”

 

작가 신단후의 고백은 단순한 작업노트의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한 화가가 오랜 시간 자신의 존재와 예술의 이유를 탐문해온 기록이며, 동시에 오늘날 한국미술이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를 묻는 질문처럼 들린다.

신단후 초대展 포스터

대구 갤러리 더 블루에서 열리고 있는 신단후 초대전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는 단순한 회화 전시가 아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적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다시 꺼내 보이는 사유의 장에 가깝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으로, 한국 전통미의 핵심 정신을 상징하는 말이다. 신단후는 이 미학을 단지 전통의 수사나 장식적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존재를 대하는 태도이며, 자신이 평생 추구해온 조형 철학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영주 성혈사 꽃살문  130x130cm oil on canvas 

작가는 오랜 시간 꽃과 사물, 도자기와 문양을 그려왔지만 어느 순간 단순한 재현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 결핍은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였다. “왜 그리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의 역사와 미의식 속에서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국보와 전통 도자기, 고건축의 문양과 조형 언어로 향했다.

분청사기 박지화문병  116x112cm oil on canvas 

신단후의 작품 속 청자와 백자, 연꽃 문양과 전통 장식들은 단순한 민족적 향수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형식을 빌려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번역된 이미지들이다. 작품 속 도자기는 실제 유물처럼 묘사되지만 동시에 시간의 흔적과 균열, 추상적 색면과 여백 속에서 낯설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태어난다.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  130x116cm  oil on canvas 

특히 이번 전시에 출품된 청자 연화문 표형 주자 연작은 한국 도자의 우아한 곡선미와 불교적 상징성을 현대회화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대표작으로 주목된다. 캔버스 전체를 감싸는 청록빛과 보랏빛의 깊은 색조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침묵과 명상의 정서를 불러낸다.

분청사기 철화 당초문  90x72cm  oil on canvas 

또 다른 작품인 백자철화 연작에서는 조선 백자의 소박함과 자유로운 필선이 현대 추상회화와 맞닿는다. 절제된 구성 안에서도 강한 생명감이 살아 있으며, 여백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수백 년 전의 도자기 안에는 오늘날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추상성과 비대칭, 우연성과 여백의 감각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현대적일 수 있다는 역설 속에서 한국미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전통의 복원이 아니다. 과거를 복제하거나 향수를 소비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살아남은 미감의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사유하는 작업이다. 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형식이 아니라 시대를 견디며 축적된 감각의 깊이라는 것이다.

전시 전경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화려한 자극 대신 조용한 긴장감과 마주하게 된다. 그림들은 큰 소리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오래 바라볼수록 천천히 스며드는 깊이를 지닌다. 마치 오래된 백자의 숨결처럼, 비어 있는 듯하지만 충만한 감각이 공간을 채운다.

 

그의 작업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그리고 신단후는 그 답을 한국의 미 안에서 찾고 있다. 화려한 기교보다 절제 속의 균형을, 과잉된 자극보다 오래 바라볼수록 깊어지는 침묵의 힘을 통해서 말이다.

 

한편 신단후 초대전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5월 2일부터 15일까지 대구 중구 태평로 푸른병원 14층 갤러리 더 블루에서 열린다. 

신단후 작가

작가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경기미술대전 대상,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대구시미술대전 특선 및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국내외 아트페어와 프랑스·일본·튀르키예 등 해외 전시에도 참여하며 한국적 조형미의 현대적 가능성을 꾸준히 탐구해오고 있다.

전시개요
 

  • 전시명 : 신단후 초대전 《검이불루 화이불치》
  • 전시기간 : 2026년 5월 2일(토) ~ 5월 15일(금)
  • 전시장소 : 갤러리 더 블루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 102 푸른병원 14층)
  • 참여작가 : 신단후
  • 주최·주관 : 갤러리 더 블루
  • 전시문의 : 053-269-8712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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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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