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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향기] 인연, 머그잔과 탁자의 조우遭遇 - 김영희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인연, 머그잔과 탁자의 조우遭遇 

 

김영희

 

    칠월 칠석 날, 견우와 직녀는 일 년에 한 번 만나기 위해 오작교를 건넌다.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와 목동 견우가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일에 게을러진 탓에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살게 된다는 전래설화. 매년 음력 7월 7일, 까막까치들이 놓아주는 오작교에서 둘이 만날 수 있다는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364일을 그리워하며 보내다가 허락된 하루, 서로를 만나기 위해 그리움의 강을 건넌다. 

 

    머그잔을 동네 사회복지센터에 보냈다. 50잔을 깨끗이 씻어 두꺼운 종이상자에 깨지지 않도록 잘 담았다. 도자기 컵이어서 상자는 꽤 무거웠다. 아이들이 학교가 끝난 후 부모가 일터로 나간 빈집에 가지 않고 함께 모여, 밥도 먹고 공부도 하며 책도 읽을 수 있는 '청개구리 쉼터'로 보냈다. 먼저 컵이 필요한지 선터장께 여쭤봤다. 전화를 받자마자 그는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청개구리 쉼터'는 청개구리들이 모여있다는 의미를 붙여 지은 이름 같다. 잠시 기다리니 중고등학생 여러 명이 와서 컵이 든 종이상자를 차로 옮겼다. 그렇게 머그잔을 떠나보낸 자리에는 새로운 모양의 머그잔이 자리를 채웠다. 몇 년에 한 번씩 기업 이미지 변신을 위해 컵이나 탁자, 인테리어와 조명 등을 바꾼다는 이유인데, 이번에는 머그잔의 모양과 로고까지 완전히 바뀌어 이미지 쇄신을 꾀한다는 설명이었다. 흙으로 단단하게 구워져 두툼하고 잘 깨지지 않는 듬직한 머그잔을 아까워서 그냥 버릴 수 없었다. 색이 바랜 것은 놔두고 깨끗한 것으로 골라 보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정부 주도로 흡연을 실외에서 할 수 없다는 법이 만들어졌고, 갑자기 실내 흡연실이 필요해졌다. 대형 매장들은 법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부 공간을 축소하고, 흡연실을 실내에 설치해야 됐다. 넓은 공간 일부를 흡연실로 변경하기 위해 먼저 공간을 유리벽으로 분리하고, 천장공사를 하여 환풍장치와 자동문을 설치했다. 
 

    골목에서, 거리 여기저기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사라진 거리는 쾌적해졌고, 흡연실 천장에 연결된 환풍장치를 통해 담배연기는 멀리 날아갔다. 초기에는 법 시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점차 흡연구역법이 자리 잡아갔다. 


    바로 옆에서, 주위에서,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워 발생하는 비흡연자들의 불편함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었고, 꽁초가 사라져 거리가 깨끗해졌다. 흡연실에서는 앉아서 음료와 그 어떤 것도 먹을 수 없게 법으로 정하여, 유리벽 안에 놓여 있던 의자와 탁자를 빼내야 했다. 

 

    의자와 탁자는 튼튼한 나무로 국내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앞으로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멀쩡한 것들을 버리자니 가슴이 쓰렸다. 돈으로 사려면 꽤 돈이 드는 것이니 어찌 아깝지 않을까. 이번에도 청개구리 쉼터 센터장께 전화했다. 혹시 탁자와 의자가 필요하시냐고. 센터장은 탁자가 망가져 필요하다며 기뻐하였다. 그 말을 듣고 즉시 학생들이 가져가기 좋게 탁자와 의자를 복도로 옮기고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학생들이 정을 붙이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삼십 분쯤 후에 건장한 남학생 여러 명이 와서 인사를 했다. 학생들은 모두 밝아 보였다. 사회복지사분들과 학습지도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징표 같았다. 물건을 가지러 온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잘 사용해 달라고 부탁까지 하였다. 막상 사용하던 물건들을 보내려니 자식을 떠나보내는 마음 같은 이별의 아쉬움을 느꼈다. 의자는 평소에 자주 가죽 교체를 해주어 깨끗했다. 

 

    매장에 있던 머그잔을 먼저 '청개구리 쉼터'로 보냈고, 그 후 몇 년이 지나 함께 있던 탁자와 의자도 그곳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그들은 처음처럼 같은 공간에 함께 있게 된 것이다. 떨어져 있던 긴 시간 동안 서로를 그리워했을까. 이제 그들은 예전처럼 같은 장소에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뻐할까. 
 

    학생들은 탁자에 책을 펴놓고 의자에 앉아 공부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물과 음료도 컵에 따라 먹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정들었던 머그잔과 탁자와 의자가 잘 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러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치 딸자식을 시집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은 바쁜 일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결국 나는 재회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왔다. 

    좋은 곳에서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또 다른 일생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그곳에서 생활하던 학생들과 머그잔과 탁자와 의자는, 서로를 잊지 않고 생각하며 오래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이 앉아서 책을 읽고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의자와 탁자는 그들에게 편안함을 안겨주고, 서로 함께하며 따듯한 사랑을 학생들에게 듬뿍 주리라고 믿는다. 


    비싼 것을 나누지 않아도 작은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들을 충분히 잘 이겨낼 힘을 얻게 되고, 또한 잘 이겨낼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칠월칠석에 내리는 비는 '칠석우七夕雨'라고 하여 비가 오면 두 사람이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요, 그 이튿날 아침에 비가 오면 서로 헤어져야 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이별의 눈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광개토대왕 시절 축조한 고구려 대안 덕흥리 고분 벽화(408년, 고구려 광개토대왕 18년)에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서있는 견우와 직녀를 묘사한 그림이 있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서로를 가까이 끌어당겼을까. 
 

    머그잔과 탁자와 의자가 이제 같은 공간에 함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다. 이런 일은 하늘의 조화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머그잔을 떠나보낼 때만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들이 같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잘 쓰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머그잔과 탁자의 조우遭遇가 신기하기만 하다.   만났다가 헤어졌는데 또 다시 만나는 인연은 보통의 인연이 아니다. 더군다나 좋은 관계로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일 터. 그런 인연은 운명이거나 숙명, 필연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 사이에도 운명 같은 관계가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서로에게 운명 같은 특별함을 주는 아름다운 관계가 되어보자. 

 

  보고프다. 올해가 가기 전에 시간을 내어 그들을 만나보러 가야겠다. 

   [심향 단상]

 

    사용하던 머그잔과 탁자와 의자를 필요한 곳에 나눠주며 느꼈던 감정을 글로 옮겼습니다. 


    아직 쓸만한 물건들을 폐기 처분하듯이 버리는 것은 자원 낭비이므로 어떻게 잘 쓰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필요한 곳에 보내면서 도움 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청개구리 쉼터'는 정부의 보조금도 받지만, 지역 사람들의 도움으로 유지되고 있는 단체입니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쉼터에 모여 밥과 간식도 먹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며 부모님이 퇴근하여 집에 오실 때까지 그곳에서 지냅니다. 

 

    사회복지사분들은 학생들을 사랑으로 챙겨주고 보살피며 가정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주십니다. 


    '청개구리 쉼터'는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단체로서, 지역의 관심 있는 분들의 도움이 하나 둘 모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 시설이 충분하지 않아서 많은 아이들이 보살핌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단체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봉사의 마음이 함께 할 때 오래 유지될 수 있고, 우리 사회가 밝고 행복하게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머그잔과 탁자와 의자가 다시 한 곳에서 만나게 되니 얼마나 특별한 인연인가요. 


    이 일을 계기로 사람만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인연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나와 인연이 있으므로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특별하고 고맙게 여겨집니다. 


    현재 함께 하고 있는 물건들 중에는 몇십 년이 지난 물건들도 있으니 분명 인연이 깊은 것이겠지요. 그런 물건들은 지나온 시간만큼 손때가 묻었겠지만 편리함과 안락함과 친숙함을 주니 귀한 인연임에 틀림없습니다. 

 

    견우와 직녀는 일 년 중 하루만 만나게 되는데, 그 머그잔과 탁자와 의자는 그곳에서 계속 함께 할 수 있게 됐으니 더 행복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마치 '하늘의 조화造化'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저의 지나친 비약일까요?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으며 삶을 이어갑니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인연도 있고, 해를 주는 악연도 있을 것이고, 서로에게 그저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서로의 성향에 따라 인연도 달라지고, 좋은 인연이었다가 안 좋은 인연이 되기도 하고, 무관심했던 사이였는데 어떤 계기로 좋은 인연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신이 아닌 이상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관계를 지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일입니다. 

 

    이왕이면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연이기를 바라봅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므로,   조금은 서로를 덜 힘들게, 조금은 살피며 살아간다면 좀 더 밝은 세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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